제8장

제 8 장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모든 동물들은 오랫동안 방주 안에 머물러 있었다. 하나님이 물을 거두어 주시지 않으시면 그들은 스스로 방주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기억하셨고, 그들을 방주 밖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물을 점점 줄이기 시작하셨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문을 듣자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 10:47)라고 크게 외쳤다. 만일 예수님이 그를 돌아보지 않으셨다면 그는 죽을 때까지 눈을 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불러 세우셔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눅 18:41)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바디매오는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눅 18:41)라고 말했고, 예수님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한 번 돌아보아 주심으로 고통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기록되어 있다.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게 포위되어 극심한 기근으로 고통을 겪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돌아보심으로 양식이 풍족해졌다. 또한 자식을 낳지 못해 괴로워하던 한나를 기억해 주심으로 그녀는 선지자 사무엘을 낳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아보시는 날, 우리는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고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높일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이 열리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심판이 끝나자 하나님은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을 닫으셨다. 산불이 한 번 지나간 자리에서는 이미 탄 초목이 다시 타지 않는 것처럼, 이미 심판을 받은 죄에는 다시 심판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을 닫으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을 예수님께 내리시고, 우리를 향한 당신의 진노를 거두셨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죄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진노를 끝내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후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표로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예수님께 우리 죄에 대한 심판을 내리신 후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10:17)고 약속하셨다.

우리가 사탄의 정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 안에서 목적지도 없이 그저 바람이 부는 대로 떠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정확하게 아라랏 산으로 인도하여 머물게 하셨다.

목자가 양 떼를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인도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인도하신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걸음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염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신실하게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고 계신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시 37:23)라고 말씀한다.

또한 성경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라고 말씀한다. 소경과 같은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걸음을 주장하면 결국 실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밝히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걸음을 우리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친히 인도하신다.

우리가 가장 안전하고 복된 길을 걷는 이유는 우리의 걸음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이다.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물밖에 보이지 않던 방주 밖으로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이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그 엄청난 물이 줄어들게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분명한 표시였다.

다윗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시 40:2)에 빠졌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어려운 형편에 처할 때가 있다. 그런데 전혀 소망이 보이지 않던 상황 속에서 조금이라도 소망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역사하고 계신다는 증거이다.

또한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라는 말씀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마음이 육신을 따르는 데서 멀어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점점 자라 간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증거이다.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방주 밖으로 나간 까마귀가 다시 방주로 돌아온 것은 땅이 아직 마르지 않아 내려앉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귀는 마치 세상에 마음 둘 곳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인다. 사람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다. 예수님은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세상이 주는 만족은 잠시뿐이며, 곧 다시 목마르게 된다. 그러나 그 목마름으로 인해 고통하는 사람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신 예수님을 찾게 된다. 목마른 자가 복된 것은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 107:9)라고 성경이 말씀하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죽어 지옥에 간 부자와 천국에 간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는 세상에 빠져 스스로 부족함이 없다고 여김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은 사람과 세상적인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심령이 가난함으로 하나님을 찾은 사람의 결국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 준다.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방주로 돌아온 비둘기를 노아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였던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께로 돌아오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모두 받아 주신다. 하나님은 마치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탕진한 아들이 모든 것을 잃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부둥켜안고 기쁨으로 맞이한 아버지와 같으시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당신께 은혜를 구하러 오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빈손으로 돌려보내신 적이 없었다. 오히려 당신을 찾지 않는 자들에게까지 먼저 찾아가 은혜의 손길을 내미셨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사 65:1,2).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우리 주위에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들이 많이 존재한다. 노아가 비둘기가 입에 물고 온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보고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던 것처럼,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얼음이 녹고 꽃이 피는 것을 보면 봄이 왔음을 알 수 있고, 낙엽이 지는 것을 보면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어두운 동쪽 하늘이 점점 밝아지면 해가 떠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여인의 배가 점점 불러 오르면 임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면, 그분이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분명히 알 수 있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가 씻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 수 있고, 우리가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비둘기가 방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방주 밖의 환경이 비둘기가 살아가기에 충분했음을 의미한다. 비둘기가 스스로 준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가 살아가는 데 부족함이 없는 환경을 마련해 두셨던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사울에게 쫓기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뿐 아니라 함께한 육백 명의 사람들까지 돌보시는 하나님을 보았기에 그는 담대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또한 “자녀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하느니라”(고후 12:14)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 두신다.

이는 마치 요셉이 앞으로 닥칠 칠 년의 흉년을 대비하여 풍년의 때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식을 저장해 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까지도 이미 예비하시는 분이시다.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땅 위에서 물이 걷힌 후, 노아가 방주의 덮개를 열고 바라본 세상은 홍수 이전과는 여러 면에서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 역시 구원받기 전과 후에 바라보는 세계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경험한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십자가가 단지 교회의 상징으로만 보였지만, 영접한 후에는 우리의 죄값이 영원히 치러진 거룩한 구원의 표로 보이게 되었다. 그로 인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던 자리에서 벗어나, 모든 죄를 용서받고 심판에서 자유하게 된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또한 구원받기 전에는 육신의 만족을 위해 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하며 살았지만, 구원받은 후에는 하늘의 것을 사모하는 새로운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이전에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해 무관심했으나, 이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긍휼한 마음을 품게 된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홍수가 시작된 지 일 년 열흘이 지나서야 땅이 완전히 말랐다. 사십 일 동안 비가 내렸고, 땅을 덮었던 물이 줄어들어 완전히 마르기까지는 삼백칠십 일이 걸렸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에 하루 만에도 물을 모두 거두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가 가까워졌을 때 이렇게 말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신 7:22).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한 번에 쫓아내지 않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배려하신 것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도 때로는 기도에 즉시 응답하시지만, 어떤 때는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신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더디 하시는 것은 결코 무관심이나 거절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때는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선하고 복된 때이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하나님은 땅이 물에 잠겨 있을 때에는 노아에게 방주 밖으로 나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땅이 완전히 마른 후에야 비로소 나오라고 명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아무 준비 없이 무작정 순종하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발을 내딛어도 아무 문제가 없도록 모든 것을 미리 예비하시고, 그 후에 말씀을 따라 행하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할 때, 우리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오히려 어려움이나 실패를 겪을 것 같은 두려움을 갖는다. 그러나 성경은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잠 28:26)라고 말씀한다.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따를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 3:5)라고 권면한다. 우리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를 때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지키시는 참된 안전 가운데 거하게 된다.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에 들어갈 때도 함께 들어갔고, 나올 때도 함께 나왔다. 그들은 노아와 함께함으로 물의 멸망에서 구원을 받았고, 그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는 말씀처럼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우리도 그분과 함께 부활하였기에 성경은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 6:5)고 말씀한다.

더 나아가, 성경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5,6)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였으며,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힌 바 되었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자신을 위한 먹을 것이나 쉴 곳을 마련하기보다, 가장 먼저 제단을 쌓았다. 이를 통해 심판 가운데서 자신과 가족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그의 감사가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

노아가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방주를 준비함으로 물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명하심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한 멸망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성경은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롬 4:16)라고 말씀한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만일 상속자의 자격이 우리의 행위에서 비롯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라 대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후사가 되게 하셨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러한 은혜를 베풀지 않으셨다면, 죄 가운데 있는 우리는 영원한 멸망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은혜를 그 어떤 귀한 것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송한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노아와 그의 가족은 물로써 모든 사람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직접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육신을 따라 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심판이 사람의 근본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판 이후에도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이러한 악한 본성을 가진 우리를 고치려고 하지 않으셨다. 대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셨다. 그리고 우리 안에 새 생명을 주셔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옛 본성 자체를 문제 삼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주신 새 생명을 따라 행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옛 사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사람을 보신다.

이러한 이유로 영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육신의 기준이나 자신의 눈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성경은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롬 14:22)라고 말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