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린도후서 6장 1절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 6:1)


미국 대통령이 사는 백악관에는 담장이 둘려 있어서 사람들은 담장 밖에서 백악관을 쳐다보기도 하고, 기념 촬영도 하지만 경계가 상엄한 그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백악관도 그러할진대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나오는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역시도 자기들이 왕이 베푼 혼인 잔치에 초청받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왕의 은혜로 왕궁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백악관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쉽게 천국에 갈 수가 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어느 동네 아이들은 축구 시합이 있는 날에는 입장료도 없이 자기들이 사는 곳에 있는 축구장에 가곤 합니다. 그들은 한 번씩 축구장 관중석에 자리가 많이 비면 관계자들이 축구장 뒷문을 열어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축구장 밖에서 뒷문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가 문이 열리면 모두 기뻐하며 축구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도록 천국 문을 열어 주시면 천국에 들어가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쉽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공짜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도, 우리가 마시는 물도, 아름다운 전경도 우리에게 모두 값없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천국조차도 거저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천국문을 활짝 열어 놓으시고 당신에게 오라고 종일토록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사 65:1-3)

어떤 것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시며, 당신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우리 죄를 사하시고 당신에게로 돌아오라고 종일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것을 보면 우리의 지혜로는 도저히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행하심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는데 그것의 풍성함은 우리 인간의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높고 깊고 넓은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조건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라고 말씀합니다. 은혜라는 말에는 값없이 거저 주는 선물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행위를 따라 구원받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만일 은혜로 된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롬 11:6)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인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행 10:4-6)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고넬료는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놓고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를 초청해 왔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였는데 그가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43)라고 말을 할 때에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 왔습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이 말 할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행 10:44)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고넬료 집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베드로가 한 말을 듣고 믿었을 뿐입니다.

성경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라고 말씀하며, 또한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어떤 악을 행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아 천국을 유업으로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알기에 우리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직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행위가 악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서 예수님이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사람들이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눅 4:22)라고 말을 하며 배척하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눅 4:24-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엘리야나 엘리사와 같은 선지자들을 멸시함으로 그들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역시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한다면 그 은혜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대접받을려면 하나님을 대접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2-14)라고 말씀하시면서 많은 사람이 당신을 거부함으로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은혜에서 떨어진 자”(갈 5:4)가 아닌지 돌아 보아야 합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2:16. 17)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 자기가 가져가야 할 물건들을 세밀하게 챙기는 것처럼 사람은 자기의 구원 여부를 주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