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을 밝히소서

편 13편 1절에서 6절까지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시 13:1-6)

 
예수님이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라고 제자들에게 물으시자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고, 시몬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헸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어떤 사람도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야로 믿지 않고 선지자들 중의 한 사람 정도로 아는 것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예수님을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신 지 삼일 만에 말씀대로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두 제자는 자기들과 동행하는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길 가시다가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눅 24:17)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당신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과 오랫동안 함께 있었기에 얼마든지 예수님을 알아볼 만한데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지 않으시니깐 그들의 눈은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 떡을 가져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자 그제사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사람의 눈을 밝히지 않으시면 영적인 세계를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 역시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강가에 모인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여자도 함께 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케 하심으로 그와 그의 집이 다 구원을 받고 세례를 받았습니다.[행 16:14,15] 루디아가 복음을 들을 때 하나님이 돕지 않으셨다면 그는 복음을 깨우치지 못해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인생을 마음껏 즐기다가 죽음 직전에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갈 거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자신과 마귀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한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들의 힘으로는 결코 애굽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처럼 마귀에게 강하게 잡혀 있는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결코 그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떠나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여 복음을 깨닫지 못하게 함으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마귀의 궤계에서 벗어나게 해 줄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 필요합니다. 마귀에게 잡혀 있는 인간은 하나님이 도우셔야 구원을 받을 수 있기에 사람의 구원은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한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전히 죄를 지으면서도 죄가 없는 거룩한 자라고 말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피로 정결하게 된 자신을 보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죄짓는 자신을 보면서 감히 ‘의롭다’, ‘거룩하다’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죄 사함은 예수님 안에서 얻어지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죄 사함을 받아 거룩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이 마귀의 권세에서 구원을 받아  예수님 안으로 옮겨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이로 보건대 비록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지만, 여전히 죄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구원받지 못한 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복음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은 구원받기 위해서 자신의 의지나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히 12:2)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그 사람의 마음의 눈을 밝혀 복음을 믿을 수 있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았던 고넬료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베드로를 그에게 보내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도우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 앞에 은혜 입기 위하여 나아오는 자를 반드시 도우실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끊이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그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않겠느냐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 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사 28:23-29)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에게 식물을 길러 그것으로 음식을 만드는 법을 자세히 가르치신 하나님이 구원받기 위해 당신에게 긍휼을 구하러 나아오는 자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하셔서 복음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돕지 않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고 말씀합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