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것이 없나니

모데전서 4장 4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자 다윗은 자기와 함께하는 육백인을 데리고 블레셋에 있는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갔습니다. 아기스는 다윗의 요구로 시글락을 그에게 주어 거하게 하였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군대를 모집할 때 아기스는 다윗과 그의 사람들도 자기와 함께 가자고 말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아기스를 따라가자 그들을 본 블레셋 방백들은 다윗이 전쟁에서 자기들의 대적이 되어 오히려 이스라엘 편을 들 것을 두려워하여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다시 시글락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시글락으로 돌아오자 이미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침노하여 불사르고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사로잡아 가 버렸습니다. 그것을 본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고,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고 하자 다윗은 크게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었고, 하나님께 “내가 이 군대를 쫓아 가면 미치겠나이까”(삼상 30:8)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삼상 30:8)라고 말씀하셨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아말렉의 뒤를 쫓아가 그들을 파하고 모든 사람을 되찾아 왔습니다.

시글락이 불타고,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사로잡혀간 것을 본 다윗과 그와 함께한 사람들이 울 기력이 없도록 운 것을 보면 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다윗은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이 자기를 돌로 치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고통 중에 고통이 더해지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 하나님이 마치 그들을 버리셨거나 징계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말렉을 치고 그들의 손에서 자기의 모든 가족을 구원하고 양 떼와 소 떼를 다 탈취한 것과 시글락이 불탄 것으로 인해 다윗이 헤브론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을 보면 다윗이 당한 이 모든 일들이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 갈 때 그것으로 인해 요셉은 큰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요셉에게 내리신 재앙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재앙이 아니라 요셉을 통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한나가 자식이 없으므로 그의 대적 브닌나에게 심한 고통을 받았던 것도 하나님이 그 고통으로 인해 그에게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어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세우려는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보건대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환난을 겪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그 환난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우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은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3,4)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환난을 통해 위로의 하나님을 배우게 하셔서 우리로 환난 중에 있는 사람을 위로하여 고난을 견딜 수 있도록 돕는 자가 되게도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라고 말씀합니다. 범사라면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어려운 형편에 놓였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우리가 마귀의 유혹에 빠져 고통을 당할 때 자기 잘못을 알기에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는 자신을 정죄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때에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으시기에  마귀의 유혹에 빠진 우리를 믿음의 시련을 통해 인내를 배우게 하여 완전하고 완벽하여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자로 만드십니다.

우리가 때때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조차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은 성경은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히 12:11)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은 어떤 모양으로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이루게 합니다. 우리 보기에 재앙처럼 보이는 것이라도 그것은 재앙이 아니라 그것으로 하나님을 더욱 알게 만들어서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와 연관된 사람들을 영적으로 자라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경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전 7:14)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이 형통할 때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곤고한 날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께 감사가 쉽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다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은혜롭게 이끌어 주셔서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자기를 괴롭히는 육체에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가시를 없애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 간구하였는데 하나님은 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바울은 자신이 받은 여러 계시가 지극히 커서 얼마든지 교만해질 수 있는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가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머물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육체에 가시를 주어 그를 치게 하여 자고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그것을 깨닫게 되자 그는 육체의 고통 속에서도 크게 기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9,10)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자식에게 나쁜 것을 주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모두가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것들이지 버려야 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