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길 자

마서 9장 10절에서 16절까지 읽겠습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0-16)


이런 회사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한번 그 회사에 입사하면 본인이 그만두기 전에는 죽을 때까지 해고당하는 일이 없고, 생활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많은 급여를 받고, 회사 분위기는 가족 같아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주어지는 일도 각 사람의 능력과 취미에 맞게 주어 지기 때문에 일이 쉽고 재미가 있어 많은 사람이 서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그런 회사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입사 시험이 없고, 누구든지 그 회사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긍휼을 구하기만 하면 직원으로 채용해 주는 회사입니다. 이런 이상적인 회사는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정을 해 본 것인데 만일 이런 회사에 시험을 쳐서 들어간다면 그 회사에 들어간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겠지만 주위 사람들도 그 사람을 대단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긍휼을 구하는 사람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회사에 들어간 사람은 결코 자신을 자랑할 수가 없고, 오직 자기를 긍휼히 여겨 직원으로 받아준 회사에 감사할 것입니다.  

천국이 그렇습니다. 천국은 우리의 지혜나, 선을 행하려는 의지나 노력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의 행위로 천국을 들어가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보다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들어가는 곳이기에 우리가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 전, 그들이 아직 어떤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마치 하나님이 불의한 분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라는 말씀처럼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심을 따라 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창세 전에 이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당신의 자녀가 되도록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서가 태어나기 전에 그를 미워하리라고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에 에서는 어떤 행위로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당신의 자녀가 되도록 예정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어떤 행위로도 그 하나님의 정하심을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죄에 매여 우리의 행위를 옳게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그러나 마귀에게 속은 인간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도 은혜를 은혜답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수고로이 우리에게 많은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으로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게 하셔서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시 107:10,11)라는 말씀처럼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마귀에게 속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생으로 당신을 찾게 하기 위해서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사 30:20)을 허락하셨습니다.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구하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고난을 겪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시 107:6,7)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고통에 빠졌을 때 하나님을 찾게 되는데 그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베푸신 당신의 긍휼을 보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어떤 이유로든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자가 예수님을 통해서 베푸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고통을 허락하신 이유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므로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시 107:12-15)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한나에게 일찍이 아들을 주실 수 있었지만, 당신의 긍휼을 알게 하기 위해서 그로 브닌나로 인해 원통함과 격동함을 당하게 하셨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 때마다 하나님은 여러 민족으로 그들을 괴롭게 하여 그들을 향한 당신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신 29:4)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그것을 보게 하기 위해서 당신에게 긍휼을 구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가 그 마음을 따라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길 자로 보셔서 예수님을 통해 보이신 당신의 긍휼을 알게 하십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는 자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이 또한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