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이냐, 죄인이냐

태복음 12장 36절, 37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


민수기 21장에는  놋뱀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할 때 그곳으로 가는 지름길 대신 에돔 땅을 둘러서 가려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자 하나님이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그러자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가 범죄하였으니 하나님께 기도하여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민 2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았고,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보면 살았습니다.

성경에서 놋은 심판을 뜻하는데 이 놋뱀은 우리 죄의 값을 치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뱀에 물린 사람이 놋뱀을 쳐다보면 살았듯이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구원받게 됩니다.

사람들이 흔히 설교의 황태자라고 부르는 스펄젼의 구원 간증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루는 스펄젼이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자기가 다니던 교회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가까운 작은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날 그 교회 목사가 없었는지 어느 한 초라한 사람이 나와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날 설교의 본문은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사 45:22)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그날 말씀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는지 주님을 바라보라는 맥락의 말만 계속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스펄젼을 가리키며 지금 이 시각에 성경 말씀에 순종하면 당신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예수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스펄젼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고, 그 순간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그렇게 구원을 갈망하던 그에게 구원의 빛이 비취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자신을 짓누르던 죄의 짐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에 참으로 쉽고 간단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것은 그들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뱀에게 물린 사람이 놋뱀을 쳐다보면 살 수 있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십자가에서 죽어가던 강도는 구원받을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뱀은 죄의 주체인 마귀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불뱀을 없애지 않고 놋뱀을 바라보게 하셨던 것처럼 동일하게 하나님은 마귀를 없애지 않고 우리로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죄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십자가를 보며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을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죄에 매여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마귀에게 미혹되어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죄악 된 자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밤에 물 위로 걸어서 배에 타고 있는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보고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그들에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마 14: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을 했고, 예수님은 “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에게로 갔습니다. 그러나 가는 도중 그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 물에 빠져들었고, 예수님에게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 14:31)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물에서 구원하여 배에 함께 오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있으며, 그도 역시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왜 물에 빠져들어 갔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가 물에 빠져들어 간 것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참으로 큽니다. 마귀는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이 문제 삼지 않으시는 헐벗은 것에 초점을 맞추게 하였던 것처럼 마귀는 여전히 사람들로 하나님이 이미 용서하신 자신의 죄들에 초점을 맞추게 합니다. 마귀에게 속아 자신의 죄들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도 구원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합니다.

구원은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롬 4:5)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악 된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구원입니다. 모든 사람은 예수님으로 인해 죄가 없는 의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를 거룩하게 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성경은 죄로 정하고 있는데 그래서 불신자를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의인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아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말하며, 죄인은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아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경은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창 6:9)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물로써 사람들을 심판한 홍수가 있고 난 뒤에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었으므로 인해 그의 아들 함에게 판단을 받은 것을 보면 그도 아브라함처럼 행위로는 자랑할 것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노아가 의인이 된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오늘 읽었던 말씀을 보면 심판 날에 하나님은 사람이 어떤 말을 하든지 간에 그의 말을 따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기 때문에 사람이 하는 말이 그 사람을 증거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이 심판받을 자인 것을 증거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 25:46)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자신을 의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사람이기에 심판을 받지 않고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왕 노릇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자기를 의롭게 해 놓으신 예수님이 보여 자신이 의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의인입니까? 아니면 죄인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