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하면 거룩하리라

애굽기 30장 22절부터 29절까지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상등 향품을 가지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오십 세겔과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로 하고 감람 기름 한 힌을 가지고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너는 그것을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상과 그 모든 기구이며 등잔대와 그 기구이며 분향단과 및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그것들을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라 이것에 접촉하는 것은 모두 거룩하리라”(출 30:22-29)


한 부인이 결혼하기 전에 돈을 빌려준 남자에게 돈을 받지 못하자 그 빚을 받기 위해 그 남자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나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지만, 여전히 남편에게 빚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은 자기 아내를 무척 사랑하고 아껴 아내가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그 부인은 남편의 빚을 탕감시켜 주고 하나님 안에서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결혼  전에 남편에게 빚을 받지 못한 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불행이 아닌 축복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형들은 그를 죽이려고 하다가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이십을 받고 팔았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상인은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충성되게 일을 했지만,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뿌리침으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마치 하나님께 버림받은 저주받은 자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그런 일들이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간음 중에 잡히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불행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그가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잡힘으로 인해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살던  사마리아 여인이 그의 목마름으로 인해 메시야 되시는 예수님을 만난 것을 보면 죄악된 삶을 산 그를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행하는 일이나 당하는 일이 저주가 될지 축복이 될지는 그 결국이 말하여 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실 때 예수님의 좌우 양옆에서 두 강도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두 강도는 사형을 당할 정도로 악을 행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행한 악으로 사형을 당하는 것이 불행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것은 어떤 모양으로든 그들이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한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예수님에게로 달아 내린 이유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진 것도,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 위로 올라갔던 것도 예수님 주위에 많은 무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십자가의 두 강도가 죽을죄를 지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면 예수님과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두 강도는 처음 십자가에 달렸을 때 예수님을 욕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 강도 중 한 사람은 십자가에 달려 있는 동안 예수님을 영접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성경에는 그가 어떻게 변화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하여 구원받은 것을 보면 심한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욕하던 그가 예수님과의 대화 없이 짧은 시간 안에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회개하고 낙원을 약속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라고 말했고,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강도의 결국이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된 것을 보면 그가 죄를 지어 십자가에서 죽게 된 것이 결코 불행한 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강도는 그의 죄로 인해 예수님과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예수님을 배척함으로 인해 그의 결국은 영원한 멸망이 되었습니다. 두 강도는 동일하게 죄를 지어 십자가에 달렸지만 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축복되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저주가 되었습니다.

성막의 기구들에 관유를 바르면 거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것들에 접촉하는 모든 것들은 거룩하게 됩니다. 성막은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우리는 부정한 자이기에 우리에게는 부정한 것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우리가 거룩한 예수님과 접촉되면 거룩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과 접촉이 되는 순간 우리와 우리의 모든 것은 거룩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연결이 되면 우리 보기에 불행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사실은 우리를 예수님에게로 이끈 축복된 것들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거룩한 자가 되어 예수님 안에 거합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불행이나 저주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항상 축복일 수 밖에 없기에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고 말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