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는 일을 엿새 동안에 다 이루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그리고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하다’는 뜻인데, 하나님은 일할 것이 없는 일곱째 날을 다른 날과 구별하시고 복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본래 인간이 안식 가운데 거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자는 안식 안으로 들어가게 되며, 성경은 이러한 자에 대해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히 4:10)고 증언한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여기서부터 성경은 하나님께서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역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선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눈에는 요한계시록이 장차 일어날 일들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그것마저도 이미 다 이루어진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구약 성경에 기록된 자신에 관한 모든 예언을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것 또한 이미 완성된 사건이다. 더 나아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5–6)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을 믿는 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나라에 있는 것 역시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다.
이처럼 하나님 안에서 이미 완성된 이 모든 사실이 곧 우리의 실상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농부는 땅에 뿌린 씨가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땅을 일구고 거름을 준다. 그렇게 수고하여 가꾼 땅은 점점 윤택해지고, 마침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 마음에 당신의 말씀이 뿌리를 내려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끊임없이 수고하며 역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음을 경작하지 않은 사람은 “모든 불의와 추악과 탐욕과 악의가 가득하며, 시기와 살인과 분쟁과 사기와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롬 1:29–31)가 된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마음을 경작하신 사람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23)와 같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육체를 지으시고 그 안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사람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 이로 보건대 사람은 육체와 영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며, 영이 육체 안에 거하며 육체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작용이 곧 혼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영이 육체 안에 있을 때 가지는 혼적인 사고이다. 그러나 영이 육체를 떠나게 되면 더 이상 그러한 혼적인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이 육체를 떠난 후에는 육체와 연관된 혼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우리의 영은 정한 때가 되면 육체를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도서 11:9)고 말씀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잠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에덴 동산에는 사람이 수고하지 않아도 먹기 좋은 열매가 풍성하게 있었다. 또한 동물들은 풀을 먹었기에 서로를 해치거나 잡아먹는 일도 없었다. 에덴 동산은 결핍이나 두려움이 없는, 평온하고 조화로운 곳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에덴 동산이 참으로 에덴 동산일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곳에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더 이상 에덴 동산에 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셨다. 예수님 안에는 사랑과 화평, 기쁨과 안식이 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이 곧 우리 영혼의 에덴 동산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을 알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가 선악을 알게 되는 날에 정녕 죽을 것을 하나님은 이미 아셨기 때문이다. 사람의 영과 몸이 분리되면 죽음에 이르듯이,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과 분리되면 하나님에 대하여 죽게 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을 떠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이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함으로 인해 선악의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될 것을 염려하셨다.
우리는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선악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선악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정죄하며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사랑을 보고 그것을 믿게 되었을 때, 그 사랑은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덮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로 보건대 문제는 사람이 선악을 알게 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나는 데에 있다. 그것이 곧 죄이며, 그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 진정한 회개이며,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하여 생명을 얻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아담을 위하여 그를 도울 아내를 만들어 주고자 하셨다. 그러나 아담이 거하던 에덴동산은 이미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기에, 아내가 아담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아내가 아담을 도울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그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었다.
성경은 예수님을 신랑으로, 우리를 신부로 자주 비유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을 돕는 배필로 세우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래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그분을 위해 무엇을 더할 수는 없다. 우리가 예수님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며 그 사랑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내는 존재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에 응답하는 존재로 지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아담은 각 동물에게 이름을 지었다. 그는 이름을 붙일 때, 그 동물의 특성이 잘 드러나도록 지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흙으로 지으신 첫 사람을 ‘아담’이라 부르셨는데, ‘아담’은 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름에는 그 존재의 본질과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님 역시 여러 이름을 가지고 계신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를 뜻하며, ‘엘로힘’은 ‘창조주 하나님’, ‘엘 샤다이’는 ‘전능하신 하나님’, ‘엘 로이’는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또한 ‘여호와 이레’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 ‘여호와 라파’는 ‘치료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샬롬’은 ‘여호와는 평강’이라는 뜻을 지닌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많은 이름을 가지신 것은, 그 이름들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특별히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우리는 그 이름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은 자기에게 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그를 도울 배필이 필요함을 아시고, 아담을 위해 여자를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그의 갈빗대를 취해 여자를 만드실 때, 아담은 깊이 잠들어 있어 그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처럼 우리도 무엇이 우리에게 참으로 유익한 것인지 알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시고, 우리를 위해 친히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실 때 우리는 잠든 아담처럼 그분의 역사하심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당신의 행하심을 결코 멈추지 않으신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복된 사람이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그의 아내를 만드셨기에, 여자의 근원은 아담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본질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기에게 속한 것을 사랑하므로, 아담은 자기 몸처럼 그의 아내를 사랑하였다.
성경은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히 2:11)라고 말씀한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신 예수님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입은 우리는 모두 한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이며, 하나님께 사랑받는 하나님의 것이다.
예수님은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고 말씀하셨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자가 부모를 떠난다”는 말씀은 아담 한 사람만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다. 아담에게는 육신의 부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한 몸을 이룬다”는 말씀에는 깊은 비밀이 담겨 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모든 사람은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예수님도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요 8:44)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를 떠나, 우리의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로 돌아가 그분과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룰 때, 예수님은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몸이 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변화에는 언제나 변화되기 전과 변화된 후가 있다. 아담에게도 선악을 알기 전과 후의 상태가 분명히 존재했다. 선악을 알기 전에는 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지만, 선악을 알고 난 후에는 자신이 벗은 줄을 깨닫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삼았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로 인해 고통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죄에서 해방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연합하게 되었다. 성경은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5)라고 말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