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3장 7절에서 13절까지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히 3:7-13)
아버지를 미워하는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크면서 한 번도 아버지로부터 다정한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식사할 때도 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었고, 학교를 다녀와도 잘 다녀왔냐는 말 한마디가 없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자기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죄를 범하여 감옥에 들어갈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의 담당 검사를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자기 아들을 용서해 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던 아버지가 자기를 그렇게 사랑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강퍅하였던 마음이 한순간에 부드러워지면서 마음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그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 우리는 마귀에게 속아 하나님에 대해서 많은 불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만들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하시는지, 왜 하나님이 만든 세상에는 불공평하고 악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지, 왜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만들어서 우리 인간이 죄를 짓게 하셨는지, 우리가 곤경에 처하여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왜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시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면서 왜 사람을 지옥에 보내는지 등등 말할 수 없이 많은 생각들로 하나님에 대하여 강퍅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당신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던 그날 우리의 강퍅한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하나님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 대해서 강퍅하게 되는 것은 마귀에게 미혹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생각들을 사람 속에 집어넣어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게 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듭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사람은 그들을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을 참으로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들을 애굽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애굽 땅에 재앙을 내리실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땅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갇혔을 때 하나님은 홍해 바다를 가르셔서 그들을 안전하게 지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시면서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들을 경험하면서도 당장 마실 물이 없는 형편을 만나자 마치 자신들이 갈증으로 죽을 것 같은 마귀가 주는 생각에 속아 이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들 중에 섞여 사는 사람들이 탐욕을 품자 그들 역시 그 탐욕에 미혹되어 먹을 것을 두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민 11:4-6)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속에 탐심이 들어오기 전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로 만족했지만, 그들이 탐심을 품게 되자 고기를 주지 않는 하나님에게 불만을 가졌습니다.
마귀는 사람의 육체를 통해서 사람을 미혹하는데 마귀의 미혹에 빠진 사람은 육체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5-8)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3-15)라는 말씀처럼 사실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마귀의 미혹에 이끌려서 육신의 소욕을 쫓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구원받지 못 한 사람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여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도록 유혹합니다. 마귀는 사람을 유혹하여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받은 아브라함에게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할례는 겉으로는 남성의 표피를 잘라 내는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 2:11)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육적 몸을 벗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마귀가 주는 육체의 소욕을 벗어버리고 모든 부분에 우리를 도우실 하나님으로 옷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엡 3:20)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없이는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마귀의 유혹을 이기고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히 11:13)처럼 살아갑니다.
마귀에게 속아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의 욕망을 채워주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것이 마귀가 원하는 바인데 그것을 아는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일어나는 정욕들을 버리고 자기를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딤후 2:21,22)라고 말씀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