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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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듯이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다. 성경은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17)고 말씀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그것을 알 뿐이다.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주님”(주인님)이라고 부른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땅은 혼돈하고 공허했으며, 어둠이 깊은 수면 위를 뒤덮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혼돈을 해결할 해답을 가지고 계셨다. 그 해답은 바로 빛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빛이 생겨났고, 땅을 덮고 있던 어둠은 즉시 물러갔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이 깊은 어둠 속에 있었다. 우리는 그 어둠에서 벗어날 어떤 지혜도 능력도 없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셔서, 빛이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다.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 마음속 어둠은 사라지고 대신 하나님의 빛이 충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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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셨기에 둘은 결코 함께할 수 없다. 성경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 6:14-16)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오직 빛의 자녀만이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다. 하나님은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를 천국과 지옥에 각각 두어 영원히 구별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나님은 땅을 덮고 있던 물을 나누시고, 그 사이에 하늘이라 불리는 궁창을 두셨다. 이 궁창은 물로 둘러싸인 구조이며, 그 안에는 호흡하는 모든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성경에서 ‘물’은 정결, 생명, 심판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니지만, 특별히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으며, 누구든지 그분 안에 거하는 자는 끝없는 생명과 참된 복락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물이 땅을 덮고 있던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땅에 아무 일도 행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땅에서 역사하시기 전에 먼저 그 땅을 가리고 있던 물을 거두어 내시는 일을 하셨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다. 우리의 마음은 수많은 생각들로 덮여 있으며,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고후 4:4) 한다는 말씀처럼, 이러한 생각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심으시기 전에 먼저 잘못되고 혼미한 생각들을 제거하신다. 우리의 생각이 온전히 내려지고 나면, 비로소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우리의 참된 모습과 근본이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채소나 열매에 있는 씨가 땅에 뿌려지면 뿌리를 내리고 자라 결국 같은 모양의 채소와 열매를 맺는다. 씨 속에는 이미 그 종의 형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담의 씨 속에도 아담의 형상이 있었기에 그의 자손들은 아담의 모습을 닮아 태어나게 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종종 ‘씨’에 비유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뿌려진 사람에게는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자기 안에 예수님이 계신 사람은 자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라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하나님 나라는 영원한 세계이기에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시간의 질서 안에 두셨다. 해가 뜨고 지면 하루가 되고, 그 하루들이 쌓여 일년이 되며, 그 안에 사계절이 돌아가도록 허락하셨다. 이러한 질서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시간을 통해 우리의 인생이 유한함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을 찾도록 이끄는 목적이 있다. 또한 정해진 때에 구원자 예수님이 오심을 알게 하려는 뜻도 담겨 있다.

하나님은 때때로 낮과 밤이 반복되는 자연의 법칙을 깨뜨려 징조를 보이기도 하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정오부터 오후 세 시까지 어둠이 임한 것이 그 예이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한 징조였다.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낮과 밤은 되풀이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궁창에 두 큰 광명체를 두셔서 낮이나 밤이나 항상 땅을 비추게 하셨다. 우리의 삶에도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반복되지만, 빛이신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기에 우리가 실족하지 않게 하신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더 이상 어둠이 아니듯,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이 근심 가운데 머무는 것은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라는 말씀처럼, 자신과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은 새가 하늘의 궁창에서 살고, 물고기가 물 속에서 살도록 창조하셨다. 각 동물은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 안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새는 물 속에서 살 수 없고,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사람도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도록 지으셨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안에는 생명이 있다.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을 떠나 죽은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 안으로 돌아오면 생명을 얻게 된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물고기와 새들이 각기 주신 자리에서 충만하고 번성하기를 기뻐하신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히 자리 잡아, 마귀가 주는 어떤 생각이나 욕망도 틈타지 못할 만큼 오직 하나님으로 가득 차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으로 충만해질 때 우리는 이미 천국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성경은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롬 1:19–20)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동물을 지으신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그들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욥은 “모든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말하리라”(욥 12:7)고 말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주변 곳곳에 하나님을 가르치는 많은 것들을 준비해 두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 그래서 사람은 처음에 하나님처럼 거룩한 존재였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함으로 그 거룩함이 깨져 버렸고, 그로 인해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게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잃어버린 거룩을 회복하게 하셨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인간이 가졌던 거룩을 우리에게 다시 돌려주셨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 가운데 사람이 가장 뛰어난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물과 구별하여 특별하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지만, 사람은 친히 흙으로 빚어 만드셨다. 그리고 사람을 모든 생물 위에 두시고 그것들을 다스리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자녀로 삼으셔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시고, 하나님이 누리시는 모든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왕노릇하도록 하셨다. 성경은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22:5)라고 말씀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천사들까지도 자신의 자녀를 섬기게 하신 것을 보면,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계획 속에서 얼마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입은 존재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은 사람과 동물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필요한 먹을 것을 친히 준비하셨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38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할 때 만나로 그들을 먹이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예비하신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이미 준비해 두셨기에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고백하였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할 것을 가르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