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기쁨

사야 65장 18절 한 절만 읽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사 65:18)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가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크고 위대한 분입니다. 더듬이로 생활하는 곤충은 더듬이로 느끼는 정도의 세계만 알 수 있지 그 너머의 크고 놀라운 세계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못 합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의 한계 안에서 생각하는 하나님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상상 너머에 계시는 분이기에 우리 안에서 설명되고 이해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고 지극히 일부분만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무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요즈음 전 세계는 인공지능을 의미하는 AI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을 AI가 대체하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사람의 직업이 점점 사라질 것에 대해 우려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AI가 사람의 지능을 뛰어넘지 못하지만 계속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사람 지능의 1억 배 이상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일 그런 AI를 가진 로봇들이 만들어진다면 그들은 우리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것입니다. 비록 로봇들이 굳이 자기들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 설명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로봇들은 수준 차이가 너무 나는 인간을 배제한 채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AI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무한한 지능을 가지신 하나님을 다 안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지혜와 능력이 무한한 하나님이 우리 같은 무지한 인생과 상관하시는 것을 보면 도저히 설명이 불가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시편 기자처럼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 8:4)라는 말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기의 주제를 모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을 보면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시 2:4)라고 말씀합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가면 무슨 재미로 살지? 축구도 없을 텐데”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축구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축구 없는 삶은 생각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땀을 흘리며 뛰어다니다가 어렵게 한 골을 넣었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축구를 마치고 마시는 음료수 한 잔은 갈증을 해소하며 온몸 구석구석까지 시원하게 합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축구를 못하면 무슨 기쁨으로 살겠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기쁘게 해 주려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사장이 직원들을 기쁘게 해 주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기나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도 우리를 기쁘게 하시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모르는 데서 나오는 오해일 뿐입니다.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수많은 눈이 내렸지만, 그 결정체가 다 다르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고 놀라운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지문이 다 다른 것도 우리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성경은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19,20)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우리 주위에 있는 만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엄청난 지혜와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과학자가 자기 분야에 대해 연구를 깊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무지하기에 하나님의 오묘한 세계를 알지 못해서 그렇지 만물 속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이 축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사 65:18)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하실 수가 있습니다.  

어떤 철학자가 자기 집에 죽음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는 것으로 인해 큰 슬픔과 두려움 속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집의 불행이 아버지가 젊었을 때 지은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기 집은 죽음의 저주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죄뿐만 아니라 자기 아버지가 젊었을 때 지은 죄도 이미 십자가에서 용서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기뻐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그의 마음속에 기쁨과 환희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4)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을 창조하십니다. 이 기쁨은 영원한 것이며, 천국에서 기쁨이 크면 클수록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기쁨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지혜로 이보다 더한 기쁨도 얼마든지 만들어 내실 수 있는 분입니다.

룻기에 보면 보아스가 룻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를 기쁘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오미는 흉년이 들자 자기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와서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남편 엘리멜럭이 죽자, 나오미는 두 아들과 함께 남게 되었고, 두 아들은 모압 여인과 결혼하였는데 말론과 결혼한 여인이 룻입니다. 그러다가 두 아들도 죽게 되자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는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때 기룐의 아내 오르바는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갔고,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왔습니다. 그곳에서 룻은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보아스가 왔습니다. 보아스는 자기 남편이 죽고 난 다음에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행한 것과 자기 부모와 고국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온 룻에게 은혜 베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룻에게 떡을 주어 먹게 했고, 자기 종들에게 룻이 곡식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고 꾸짖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년들에게 룻을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룻은 그날 땅에 떨어져 있는 많은 이삭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삭을 주우며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배불리 먹을 것을 생각하며 참으로 기뻐했을 것입니다. 보아스가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룻으로 줍게 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기쁨의 다발에서 우리에게 기쁨을 영원히 뿌려 주십니다. 그것은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 주는 것과 같습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 주는 것은 아이가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기뻐하게 하기 위함인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기쁨을 뿌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에서 끝없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기쁨은 이전 것은 기억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크고 새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영광과 기쁨이 충만한 곳입니다. 사도 바울은 낙원에서 보고 들은 것은 인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데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시 50:23)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게 하심으로 우리 마음에서 하나님에 대한 거짓이 없는 순수한 감사와 사랑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고후 12:15)는 사도 바울의 말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을 주심으로 우리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넘쳐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것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도 영원하며, 자비와 긍휼도 영원하며, 지혜와 능력도 영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쁨 역시 영원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에는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속에 하늘에 대한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기쁨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