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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신 31:6)

우리가 어떤 형편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시기 때문이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지혜와 능력이 되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를 당할 자 없고, 풀지 못할 문제도 없다. 그래서 성경은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6,37)고 말씀한다.


62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것 같은 길을 걸으면 마치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을 한다. 우리는 그 생각으로 인해 불안해한다. 그러나 성경은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시 66:18,19)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고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시는 일은 절대 없다.


6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수 3:7)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 그 땅을 얻도록 한 인도자였다. 하나님은 그런 여호수아를 크게 하셨는데 그는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


64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수 6:21,22)

여리고 성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그들을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항복하지 않고 싸우려 하다가 멸망을 당했다. 그런데 기생 라합은 그들과 달리 하나님을 영접함으로 그와 그의 가족이 생명을 얻었다. 성경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1,12)라고 말씀한다.


65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묻되 너희는 누구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수 9:8)

가나안에 살고 있는 족속들은 하나같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했다. 그러나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항복하여 그들의 종이 되어 생명 보존하기를 원했다. 모압 여인 룻 역시 자기 백성을 버리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하나님이 계시는 베들레헴으로 왔다. 그가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울 때 보아스는 룻에게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룻 2:12)고 말했다. 결국 룻은 보아스와 결혼을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여인이 되었다.


66

“또 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마임까지 산지의 모든 주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이라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내가 명령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하셨더라”(수 13:6,7)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나안을 유업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아직 가나안을 다 정복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그 땅을 각 지파대로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에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이루어진 사실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천국을 약속하셨는데 우리 눈에는 우리가 이 땅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이미 우리는 천국에 있다.  


67

“또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 뽑은 땅의 남쪽으로는 에돔 경계에 이르고 또 남쪽 끝은 신 광야까지라”(수 15:1)

하나님은 바다의 경계를 정하여 바다가 넘치지 못하게 하셨고,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대로 땅을 분배하시고 그 땅의 경계를 정하여 그 안에서 살게 하셨다. 성경은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시 139:5)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를 정하셨는데 우리는 그 한계를 넘어 행할 수 없다. 우리가 이것을 알면 겸손할 수밖에 없다.


6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수 21:43)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을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겪는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달리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졌다. 우리 역시도 심한 어려움을 겪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 마치 우리를 속일 것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69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사 2:21,22)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실 이유가 없다. 우리의 모든 것을 친히 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유혹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자인지를 알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셨고, 또한 이런저런 형편을 통해 우리를 알게 하신다. 우리가 자신을 알면 알수록 연약하고 악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게 된다.


70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사 4:1)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다스리는 사사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하나님을 섬겼지만, 사사가 죽으면 우상을 섬기는 악을 행했다. 사사기에는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육신에 빠져 살아갈 사람이다. 그래서 양들에게는 목자가 항상 함께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우리 영혼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이 항상 함께 계셔야 한다.


71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사 7:9-11)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고 하시면서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사 6:16)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해 자기 방법으로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기드온은 나팔과 횃불을 든 300명의 군사만 데리고 미디안과 싸워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 그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면 기드온이 믿음을 가지고 강하게 될 것을 아셨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미디안 진영에 내려가서 병사들이 하는 말을 듣자, 그는 과연 믿음을 가지게 되어 강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를 아신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고 말씀한다.


72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사 9:13)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와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가 있다. 마귀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면서도 하나님보다는 자기를 높여 기쁘게 하려 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기뻐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그것으로 만족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잠 8:17)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일하는 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신다.


73

“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사 12:6)

에브라임 사람은 어려서부터 십볼렛이라는 발음에 익숙했기 때문에 쉽볼렛이라는 발음을 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이 의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만 마귀의 자녀는 어릴 때부터 죄인이라는 말에 익숙하기 때문에 의인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 25:46)고 말씀하셨다.


7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사 15:14,15)

누가 보아도 나귀 턱뼈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될 수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자, 그는 나귀 턱뼈로 천 명을 죽였다. 너무나 보잘것없게 보이는 우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면 우리 한 사람으로도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사람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능력 없는 우리를 볼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말했다.


75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사 18:7)

라이스 거민이 단 지파에 의해 멸망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라이스 거민이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갖추었지만 그들을 위험에서 지켜줄 자가 없었다. 사람이 비록 많은 것을 갖추고 염려 없이 평온할지라도 자기를 보호하고 지켜 주실 하나님이 없다면 그는 멸망할 수 밖에 없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라고 노래했다.


76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룻 2:15,16)

우리는 은혜를 입기보다는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사는 데 익숙하다. 룻이 보아스의 은혜를 입자 자기가 수고하거나 노력하지 않았던 것을 얻고 만족할 수 있었다. 성경은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시 31:19)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날개 아래 피하는 자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어 형통케 하신다.


77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룻 3:1)

룻은 나오미에게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라고 말하면서 시어머니를 붙좇았다. 그런 룻을 나오미는 복되게 하기를 원했다.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붙좇기로 마음을 정하면 하나님은 룻에게 베푸신 은혜를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베푸신다.


78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삼상 2:1,2)

간절히 바라던 일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을 때 우리 영혼은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때때로 하나님은 오랫동안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침내는 우리 입술에 찬양의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게 하신다. 다윗은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 40:1-3)라고 노래했다.


79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삼상 7:3,4)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다른 신을 섬기면서 하나님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생각을 동시에 신뢰할 수는 없다. 그것은 마치 창조론과 진화론을 동시에 믿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우리가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버려야 한다.


80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삼상 8:19,20)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서 행진하셨을 때에 (셀라)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 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시 68:7,8)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 앞서 행하실 때 모든 민족이 두려워 떨었고, 이스라엘을 이길 자 없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들을 구원할 능력 없는 인간을 그들의 왕으로 세워 자기들 앞서 행하여 싸우게 하기를 원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81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삼상 12:19,20)

이스라엘 백성은 죄에 죄를 더했다. 하지만 사무엘은 두려워 말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고 말씀하셨다. 죄를 아예 짓지 않는 의인은 없다. 의인이 비록 죄를 범했을지라도 돌이켜 하나님의 뜻 앞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82

“요나단이 이르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그들이 만일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그들이 만일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삼상 14:8-10)

요나단은 자기 병기든 자와 함께 블레셋 사람 치기를 원했는데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만일 자기들이 그들에게 보였을 때 그들이 올라오라고 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들에게 넘기셨다는 표징으로 삼았다. 블레셋 사람은 그들을 보고 자기들에게 올라오라고 했고, 두 사람이 블레셋 사람에게 올라가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그들을 쳐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우리는 때때로 문제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릴 때가 있는데 그 문제는 우리에게 오라 손짓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문제를 허락하신 것은 그것을 통해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여 강건케 하기 위함이다.


83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삼상 18:7-10)

가룟 유다는 돈을 사랑했다. 마귀는 그것을 틈타 그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고, 그것을 따라 행하게 함으로 그를 멸망하게 했다. 사울은 왕의 자리를 사랑했다. 그로 인해 그는 자기에게 충성된 다윗과 원수가 되고, 악령이 그의 속에 역사하게 되었다. 성경은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잠 4:6-8)고 말씀한다.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지혜 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높이는 자가 복된 사람이다.


84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22:1)

이 땅에 있는 우리와 천국에 있는 우리가 대조적인 것처럼 아굴람 굴에 있는 다윗과 왕궁에 있는 다윗은 아주 대조적이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동안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을 배웠던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겪는 많은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을 배운다. 성경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고 말씀하는데 이 말씀은 환난 중에 있는 우리를 위로한다.  


85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삼상 24:2,3)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찾으러 다니다가 한번은 다윗과 같은 굴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이 다윗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셨다. 그것은 마치 바로가 이스라엘을 죽이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왔을 때 하나님이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막아 이스라엘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 것과 같다. 때때로 우리에게 두려운 형편이 다가와도 그것이 우리를 해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막으시기 때문이다.


86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삼상 26:7)

사울은 잠이 들어 다윗이 자기 가까이 왔지만, 그것을 알지 못했다. 사울의 주위에는 많은 군사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잠들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 127:1)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지 않으시면 우리의 모든 수고는 무익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성경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고 말씀한다.


87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들을 보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삼하 2:4,5)

암몬 왕 나하스는 길르앗 야베스를 위협하고 모욕했다. 암몬의 공격을 받게 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에게 도움을 청했고, 사울은 이스라엘 사람을 모아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암몬에게서 구원했다. 사울이 죽었을 때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을 장사했고, 다윗은 그런 그들에게 복을 빌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산다. 그래서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감사로 보답하는 사람에게 복을 명하신다.


88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삼하 5:3)

다윗 시대 때 이스라엘이 형통했던 것은 그들이 다윗을 자기들의 왕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에 누구를 왕으로 세우느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은 달라진다. 우리를 지키고 복되게 할 수 있는 충분한 지혜와 능력을 갖추신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신다면 우리는 비록 연약할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해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89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삼하 9:7)

다윗은 요나단의 집에 영원히 자비를 베풀 것을 약속했다. 그 약속으로 인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비록 다윗이 싫어하는 절뚝이였지만, 은혜를 입었다. 므비보셋처럼 수치를 뿌리는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 복 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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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이르되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 같이 하리라 하고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보내 그의 아버지를 조상하라 하니라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매 암몬 자손의 관리들이 그들의 주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객을 당신에게 보낸 것이 왕의 아버지를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당신에게 보내 이 성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니”(삼하 10:2,3)

다윗은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기 위해 조객을 보내었지만 암몬 자손의 관리들은 그들을 정탐으로 여겼다. 그것은 마치 요셉이 형들을 죄인으로 몰고 간 것은 그들이 자기를 판 죄에서 벗어나게 하여 자기와 함께 하기 위함이었는데 형들은 자기들이 동생을 판 죄의 대가라고 생각한 것과 같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되게 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허락하시는데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을 만날 때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그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