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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레 1:1,2)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예물을 줄 때 받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주면, 그 사람이 기뻐한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가축 중에서 소나 양의 예물을 기뻐하시는데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가 아닌 예수님을 기뻐하신다.


32

“그 제사장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레 4:17)

7은 완전의 수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제사장이 피를 일곱 번 뿌렸다는 말은 죄가 조금도 남음이 없이 완전히 용서 됐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하게 씻어 우리를 안식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 12:8)고 말씀하셨다.


33

“이에 아론이 제단에 나아가 자기를 위한 속죄제 송아지를 잡으매”(레 9:8)

아론은 다른 사람의 죄를 씻기 위해 먼저 자신의 죄를 씻어야 했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 당신을 먼저 깨끗게 하실 필요가 없었다. 거룩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당신 자신의 죄를 위한 것이 아니기에 우리 죄를 위한 것이 분명하다.


34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러한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레 11:7,8)

돼지는 율법으로는 부정한 짐승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모든 부정한 짐승은 정하게 되었다. 율법으로 인해 저주 아래 있던 우리는 복음으로 인해 저주에서 벗어나 의롭다함을 입은 자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를 정죄하는 율법을 무력화시키고,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기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다.


35

“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지니 환부의 털이 희어졌고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나병의 환부라 제사장이 그를 진찰하여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이요”(레 13:3)

제사장은 문둥병을 진찰하고 부정하다고 판단은 할 수 있어도 낫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능력의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고치셨다. 율법은 우리를 정죄는 해도 우리를 정결케 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피로 우리를 정결케 하셨다.


36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레 16:8)

7월 10일 대속죄일 날 두 마리의 염소를 준비했는데 이 두 염소는 예수님의 그림자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 죄로 인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만족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해 두려워하는 우리 또한 만족게 했다. 그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하게 되었다.  


37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4)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율법을 지키신다. 그래서 맹인 같은 우리 앞에 하나님은 절대 장애물을 놓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 앞에 있는 장애물을 친히 치우시기에 우리의 앞길은 안전하다.


38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23:22)

땅에 떨어진 이삭은 가난한 자를 위한 것이다. 가난한 룻은 보아스 밭에서 자기가 수고하지 않은 이삭을 줍는 은혜를 입었다. 하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해 두셨다. 성경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라고 말씀한다.


39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레 25:10)

희년은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50년마다 돌아오는 해이다. 희년이 되면 땅과 집이 원주인에게 돌아가고, 노예가 해방되며, 빚이 면제되었다. 희년은 예수님의 그림자인데 예수님은 죄의 값인 사망의 저주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셨고, 우리를 마귀에게서 해방시켜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게 하셨다.


40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민 3:13)

자식을 무척 사랑하여 자식의 행복을 위해 온 마음을 쏟으며, 인품이 아주 뛰어나 자식의 잘못을 잘 감싸 주고 교육하며, 부족함이 없이 부요하여 자식의 모든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물며 우리가 이 천지를 만드시고, 사랑이며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의 것이 된다는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축복이다.


41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 6:23-26)

하나님은 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어떤 말로 축복할 것인지를 가르치셨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며, 하나님은 이 모든 말씀대로 우리를 축복하신다. 성경은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사 43:13)라고 말씀한다.


42

“므라리 자손들에게는 그들의 직임대로 수레 넷과 소 여덟 마리를 주고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에게 감독하게 하였으나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었더라”(민 7:8,9)

성막을 옮길 때 무거운 것을 나르는 사람들에게는 수레와 소를 주어 그것들을 감당하게 하였고, 어깨에 메고 옮길 정도의 가벼운 것을 옮기는 사람들에게는 수레와 소를 주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일을 허락하신다. 성경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고 말씀한다.


4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민 11:23)

홍해 바다를 가르신 그 능력은, 바위에서 물을 내신 그 능력은,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하나님의 그 능력은 약해지거나 다함이 없다. 하나님에게는 그보다 더한 것들을 우리에게 행하실 능력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역시 다함이 없기에 우리는 평생에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며 살게 된다.


44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민 14:8,9)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은 그 땅의 백성이 자기들보다 강함으로 인해 그 땅을 악평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 백성은 자기들의 먹이라고 말하면서 그 땅을 취하자고 말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하고 계심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에 의심이 없다.


45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민 17:5)

하나님이 택하신 자 모세의 지팡이에는 다른 지파의 지팡이와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다. 이에 따라 하나님이 모세를 택하신 것을 사람들로 알게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택하신 분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능력이 있었고, 죽은 자 중에 살아나셨다. 성경은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고 말씀한다.


4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민 21:8,9)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 물려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놋뱀이 있었기 때문이다. 뱀은 마귀를 의미하는데 우리는 자주 마귀에게 속는다. 그럴지라도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놋뱀의 참형상인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귀의 정죄에서 고통당할 때 우리 죄로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 정죄에서 벗어나 새 힘을 얻어 다시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을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가 어느 위치에 있든지 주님만 바라본다. 


47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 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 가의 백향목들 같도다”(민 24:5,6)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마귀에게 미혹되어 자주 하나님을 슬프게 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많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안으시고 품으시며 기뻐하신다.


48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민 25:1-3)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하게 되면 그것이 올무가 되어 고통을 당하게 된다. 우리는 쉽게 유혹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키심이 필요하다.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치실 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마 6:13)라고 말씀하셨는데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마귀의 미혹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


49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버지 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 서원한 일이나 스스로 결심하려고 한 일이 있다고 하자 그의 아버지가 그의 서원이나 그가 결심한 서약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의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의 서원과 결심한 서약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민 30:3-5)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마 5:34-36)고 말씀하셨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가 형편이 어려움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을 허락하셨다면 그 맹세를 지킬 능력이 없는 우리는 정죄를 받았을 것이다.


50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 숙곳에 진을 치고 숙곳을 떠나 광야 끝 에담에 진을 치고 에담을 떠나 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으로 돌아가서 믹돌 앞에 진을 치고 하히롯 앞을 떠나 광야를 바라보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 에담 광야로 사흘 길을 가서 마라에 진을 치고”(민 33:5-8)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인 가나안을 향했다. 그런데 그들의 걸음이 그들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그들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진을 쳤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시 37:23)라고 말씀한다. 우리의 모든 걸음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으로 인한 것이기에 후회하거나 원망할 것이 없다.


51

“세 성읍은 요단 이쪽에 두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 두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거류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부지중에 살인한 모든 자가 그리로 도피할 수 있으리라”(민 35:14,15)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죽고 사는 문제는 그의 행위가 아닌 도피성으로 피한 여부에 달려 있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했기 때문에 우리 행위를 따라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면 천국에 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갈림길은 오직 도피성인 예수님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에 달려 있다.


52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신 5:2,3)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예수님으로 인한 조건 없는 축복을 약속을 하셨다. 그에 비해 모세가 받은 율법의 언약은 율법을 지킬 때 복을 받는다는 조건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율법으로 인한 두 번째 약속이 조상들에게 한 첫 번째 약속을 폐하지 못하고, 오히려 첫 번째 약속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를 알게 한다.  


5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신 9:4,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나안을 주신 것은 그들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 땅 백성의 악함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천국을 주신 것은 우리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을 주시겠다는 당신의 약속으로 인한 것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약속의 선물이기에 받는 자의 조건은 무시된다. 그래서 아무도 자기를 자랑할 수 없다.


54

“내가 처음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렀고 그 때에도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 너를 참아 멸하지 아니하시고”(신 10:10)

이스라엘 백성은 멸망 받기에 충분히 악했다. 그러나 모세가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참아 멸하지 않으셨다. 우리 역시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바 없는 악한 자이다. 그러나 오직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과 우리의 대제사장인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해 대언자가 되어 주심으로 인해 우리는 안전하다.


55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4:28,29)

성읍에 저축되어 있는 소산의 십분의 일은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한 것이기에 그들 중에 누구든지 값없이 그것들을 취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준비하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아무 대가 없이 예수님을 취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고 말씀한다.


5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신 17:14,15)

우리의 왕은 우리 형제 중에 하나님이 택하신 자를 세워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왕으로 세우신 분은 예수님이다. 성경은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 2:11)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인 동시에 우리의 형제이기에 우리의 왕이 되심이 합당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왕으로 택하지 않으셨다.


5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일,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원한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하지 아니하나 두렵건대 그 피를 보복하는 자의 마음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잡아 죽일까 하노라”(신 19:3-6)

도피성은 고의성이 없이 사람을 죽인 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을 죽인 자는 어느 곳에 있든지 쉽게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도록 멀지 않은 곳에, 그리고 그곳에 가기 쉽도록 길을 닦아 두었다. 이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기록되었는데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라도 아무런 장애물 없이 쉽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셨다. 만일 하나님이 예수님을 믿는 길을 멀고 힘들게 하셨다면 예수님과 함께 죽어가던 구원받은 십자가 강도는 절대 죽음 직전에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어떤 장애물도 없이 쉽게 하셨다.


58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신 23:3)

룻은 모압 사람이었다. 율법으로 보면 그는 절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자였다. 그러나 그는 베들레헴의 부호인 보아스와 결혼을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랐고, 다윗을 그의 증손으로 두었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은 율법이 아닌,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어떤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우리를 만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일 예수님이 율법으로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만나셨다면 그 여인이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에는 간음한 자는 죽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신 것을 보면 예수님은 우리를 절대 율법으로 만나지 않으시는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정죄하는 율법을 폐하셨다.


59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신 25:1)

의인은 의롭고, 악인은 악하다고 판결해야 한다. 만일 악한 자를 의롭다고 말한다면 의로운 자는 불의한 자가 되어 버린다. 어떤 관리가 예수님에게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 18:18)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눅 18:19)고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가 선한 자로 판결을 받는다면 선한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거짓이 되어 버리고 만다. 우리는 항상 악하기에 성경은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 14:3)라고 말씀한다.


60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신 28:15)

율법은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죄악까지 들추어낸다. 율법을 통해 우리를 보면 우리는 저주받기에 합당한 자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저주 내리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우리 대신 예수님에게 저주를 내리심으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는지를 친히 보이셨다. 자신의 악을 깊이 아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마음속에서 밝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