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장 36절에서 40절까지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 12:36-40)
수용소에서 태어난 아이는 그곳 생활을 정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보수없는 노동, 제한된 음식, 자유가 없는 억압된 제약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는 자신이 갇혀 있다거나 수용소 밖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수용소 밖의 세계를 아는 사람이 그 세계를 그에게 말하기 전까지는 그는 그런 세계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수용소 안에서 태어난 아이처럼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도 이 세상의 삶이 전부인 양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마귀를 쫓아 살아감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히 1:1)으로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리 죄를 지적하게 하셨고, 그 죄로 인해 우리가 영원한 멸망 아래 놓여 있는 것과 장차 메시야로 오실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것을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하나님은 더 이상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지 않으시고 성경을 통해서 이 모든 것들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엡 3:5,6)라고 말했습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았다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을 하는데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그렇게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이젠 누구든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셨기에 누구든지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꿈이나 환상이 아닌 복음을 깨달은 사람의 전도를 통해서 사람들이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성경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라고 말씀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갔던 에디오피아 내시를 구원하실 때 당신이 직접 그에게 나타나 복음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시고 빌립을 그에게 보내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하셨고, 고넬료를 구원하실 때도 역시 베드로를 보내어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아름답다고 성경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특별하게 나타나 자기를 구원받은 당신의 자녀라는 것을 말씀해 주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사람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천국에 들어간 거지 나사로와 지옥에 떨어진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옥에 간 부자는 살았을 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눅 16:19)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구차한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지옥의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던 부자는 나사로를 품고 있는 아브라함을 보고는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 16:27-28)라고 말을 했고, 아브라함은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찌니라”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부자는 지옥에서조차도 마귀의 간교함과 인간의 무능력함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자는 자기 형제들이 죽은 나사로가 그들에게 가면 그들이 나사로의 이야기를 듣고 회개하리라고 생각하지만, 마귀는 사람들을 갖가지 생각으로 속여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많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기적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만 결국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로 인해 두려워 떨며 고통을 받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죄 용서하심에 대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았습니다.
성경은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몸으로 행한 우리의 행위가 아닌 썩지 않고 영원히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구원받았는지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자신이 경험한 어떤 꿈이나 환상이나 소리를 하나님의 말씀보다 결코 앞세워서는 안됩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그런 것으로 역사하실 것 같으면 성경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천국은 오직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을 믿음으로 가는 곳입니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 1:5,6)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죗값인 사망을 치르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비록 하나님이 꿈이나 환상으로 나타나 말씀하신다고 할지라도 그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아닌 신비한 것들에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을 악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으로 사람이 충분히 구원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1서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