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장 8절 한 절만 읽겠습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한번은 형제님 한 분과 교제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 형제님은 몸이 반신불수였는데 하나님이 하신 일로 인해 몹시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자기 아내가 아팠는데 병원에 갈 돈이 없는 겁니다. 가족들이 있었지만 가족들에게 사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형제님이 몸이 불구가 된 후에 가족들의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도와 달라고 말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내는 낮에는 통증이 조금 설하다가 밤만 되면 고통이 심해서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토하면서 방바닥을 기어다녔습니다. 아무 대책 없이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형제님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기를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 일째가 되었는데 아내가 낮에 성경을 읽다가 ‘이제 됐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 형제님이 의아해서 아내를 쳐다보니깐 아내가 신명기 32장 10절 말씀을 읽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 32:10) 그러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낫게 하시겠다는 마음이 든다면서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말고 산책이나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형제님은 기분 전환이나 할 겸 밖으로 나와서 동네를 한 바퀴 돌고는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그런데 집으로 오니까 누군가가 왔었다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누가 왔었느냐고 물으니까 밝은 얼굴로 시장에서 일하는 교회 자매님이 왔다 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매님이 자기가 너무 아픈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면서 돈은 걱정하지 말고 빨리 병원에 가자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고는 자기와 병원에 가기 위해 오늘 장사를 마무리하러 갔다는 것입니다. 형제님은 그 말을 듣고 도저히 잘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자매님을 통해서 이렇게 일하실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아내는 병원에 갔고 치료를 받아 지금은 완전히 다 나았다고 간증했습니다.
저는 그 형제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너무 놀랍고 감격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은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은 그 말씀대로 그들을 도우셨습니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아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떨고 있었던 형제님의 형편은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형편에서 그들을 만나 주시고 호위하시고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부부를 위해서 시장에서 일하는 자매님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매님의 마음에 그 형제님 부부가 생각나게 하셨고, 그 집에 가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주셔서 일을 하다가 도중에 그 집으로 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아람 왕 벤하닷이 그의 온 군대를 모아 가지고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쌌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성 중은 먹을 것이 없어서 자기 자식을 잡아먹을 정도로 크게 주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왕하 7:1)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한 장관이 엘리사에게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형편을 보니까 하나님일지라도 하루 만에 그 많은 사마리아 성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음식을 마련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완전히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아람진에 사마리아 성 사람들 모두가 먹고도 남을 양식을 준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한번은 형제님 한 분이 자기 동생을 데리고 교회에 왔습니다. 그 동생은 마치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얼굴이 아주 창백했습니다. 그 동생은 자기는 지옥에 갈 거라는 절망 속에서 살고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 교회에서 떡 굽는 관원장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의 꿈에 떡 세 광주리가 그의 머리 위에 있고, 그 광주리 위에는 각종 구운 식물이 있어서 그것을 새들이 먹었는데 그 새들은 마귀를 뜻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머니와 이야기하다가 그의 태몽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그를 낳을 때 꿈에 엄청 많은 새를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청년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새는 마귀를 뜻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를 임신했을 때 어머니가 많은 새를 보았다고 하니까 그는 태어날 때부터 지옥에 갈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지옥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형이 그 동생을 보니깐 처음에는 아픈 줄로만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너무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생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형님은 자기 동생을 그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많은 종교 서적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종교도 믿지 않았던 형님은 아무리 책을 읽어보아도 그 동생의 문제를 해결할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비 오는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땅에 떨어져 있는 전단지 한 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보자 그 전단지를 읽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서 물에 흠뻑 젖은 전단지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것은 성경 집회를 알리는 전단지였습니다. 형은 그것을 보는 순간 그 집회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서 집회에 참석했는데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형은 동생을 데리고 교회로 왔고, 동생은 복음 교제를 통해 예수님이 자기의 모든 죄를 이미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다 용서해 놓으신 사실을 깨닫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동생은 구원받자 이제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서 너무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형제를 위해 물에 젖은 전단지 한 장을 준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고후 12:14)고 말씀합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해 일하지 않고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합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은 어린 아이와 같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십니다.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노래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다윗은 결코 자기에게 부족함이 없다고 노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노래가 우리의 노래가 되게 하십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다른 사람은 다 도우실지라도 자기와 같은 사람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준비해 두지 않으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속에 계시는 예수님을 보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자기 아버지 아합이 죽자, 모압이 자기를 배반한 것을 보고 모압을 치려고 했습니다. 그때 여호람은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함께 모압을 치러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은 그것을 허락했고, 여호람은 여호사밧과 에돔왕과 함께 모압을 치러 갑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도중에 군사와 따라가는 가축을 먹일 물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본 여호람은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왕하 3:10)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영적인 감각이 있는 여호사밧은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왕의 신하 중 한 사람이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말을 하니까 이스라엘 왕과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엘리사에게로 내려갔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여호람을 보고는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여호람이 여호사밧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엘리사는 여호람을 위해 하나님께 묻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으로 인해 엘리사는 하나님께 물었고,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여호람이 여호사밧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은혜를 입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이 우리 때문이 아니라 우리 속에 계시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라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의 말씀인지 모릅니다. 사람은 문제가 있으면 잠을 잘 자지 못합니다. 특히 소심한 사람은 조그마한 문제만 있어도 걱정이 되어 뜬눈으로 밤을 새웁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평안히 눕고 자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근심 걱정을 하지 않도록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동안 환란과 어려움 속에 있는 많은 사람을 도우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그들을 돕지 않으셨다면 슬픔과 고통 속에서 살아갈 사람이 참으로 많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지 않으셨더라면 야이로는 그의 딸을 가슴에 묻고 슬픔 속에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간질하는 아이를 낫게해 주시지 않았다면 그 부모는 아이가 언제 간질을 할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서 발을 제대로 뻗고 자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평안히 잘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 중에 한가지라도 돕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결코 평안한 밤을 보내지 못할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시 40:5)라고 노래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우리 삶 속에서도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기적을 행하고 계십니다. 한번은 하나님이 저에게 행하신 기적 같은 일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기도를 하는 중에 시편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제가 말씀을 길게 읽었던 이유는 이 구절들만큼이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많은 일을 하셨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많은 역사 중에 하나만이라도 행하지 않으셨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절대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동행하시면서 순간순간 참으로 많은 부분에서 도우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동일하게 우리도 도우셨고, 돕고 계시며 도우실 것입니다.
이사야서 58장 11절에는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풍성한 곳에서도 우리를 도우시지만 아무것도 없는 메마른 곳에서도 역시 우리를 도우십니다.
만일 애굽에서 나와 위험한 광야에서 생활하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돕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더위와 추위뿐만 아니라 짐승과 병과 굶주림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메마른 그곳에서도 그들을 위해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그들을 먹이시기 위해 만나와 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염려한다고 아무것도 해결할 수도 없지만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도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들은 자기들이 먹을 것을 넣어둘 창고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것저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 생각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부족했다면 하나님이 채우셨을 것입니다. 아굴의 잠언에는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7-9)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교만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필요 이상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함이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부족을 채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때를 따라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아이가 하루 종일 다리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왜 그곳에 계속 서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아버지가 자기가 데리러 올 때까지 여기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아버지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자기를 데리러 올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평안히 눕고 자게도 한다고 말씀하셨다면 그 말씀을 이루십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저런 문제로 평안히 자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셔서 우리로 평안히 거하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형편이나 나의 감정이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말씀을 믿을 때 우리는 우리의 형편에서 벗어나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을 결코 부끄럽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