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선2

큰 확신



살로니가전서 1장 2절부터 5절까지 읽겠습니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살전 1:2-5)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이 도저히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예수 앞에 달아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 집주인에게 원망의 소리를 듣고 지붕을 고쳐주는 한이 있더라고 그들이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보시면 그를 불쌍히 여겨 낫게 해 주실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대로 지붕을 뜯어 중풍병자를 예수님에게 달아내렸고, 예수님은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낫게 해 주셨습니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었는데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는데 그때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낫겠다는 마음이 일어나서 예수님에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걸어가고 계시는 예수님을 큰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았는데 병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는 그에게는 그 무리를 뚫고 예수님에게로 가까이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받겠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기에 온 마음과 힘을 다해 그 무리를 헤치고 들어가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능력이 그에게 들어가 그의 혈루 근원이 말라 병에서 낫게 되었습니다.

소경 거지 바지매오도 예수님이 자기를 낫게 해 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길가에 앉아 있던 그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 10:47)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를 꾸짖으며 “잠잠하라”(눅 10:48)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그에게 예수님이 자기를 낫게 해 주시리라는 분명한 확신이 없었더라면 한두 사람도 아닌 많은 사람의 꾸지람 앞에서 그는 낙심하고 예수님을 다시 부를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은혜를 구하는 자를 절대 외면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더욱 심히 소리를 질렀고, 예수님이 그의 소리를 들으시고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게 하시고는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눅 10:51)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눅 10:51)라고 대답했고,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0:5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은 어떤 장애물이나 방해에도 매이지 않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 은혜를 입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대제사장에게서 받은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기 위해 가던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자  그는 말할 수 없는 핍박과 환난을 겪으면서도 죽을 때까지 흔들림 없이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는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6-19)라고 말을 했는데 우리는 그의 말을 통해 그가 사람이 죽은 뒤에는 다시 산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게 하였습니다.

믿음은 분명한 확신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뿐만 아니라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이름 없이 죽어간 허다한 믿음의 사람들도 나옵니다. 그들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5-38)

이들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고난을 택한 것은 그들이 죽은 후에는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왕노릇 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들의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함으로 인해 그렇게 살아야 할 필요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롬 8:20)라고 말씀하는데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해 세상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허무한 것에 굴복 당한 채 살아갑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라는 말씀처럼 2000년 전에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을 방문해도 큰 뉴스거리가 되는데 하물며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이 친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좋은 소식을 전하러 오셨다는 것은 얼마나 놀랍고 흥분된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지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것은 사람들이 공교히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닌 실제 있었던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마치  밭에 엄청나게 값비싼 보화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귀에게 유혹되어 육신적인 것들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고 세상에서 자기를 지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을 기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우리의 주이신 것을 분명히 믿는 사람은 마귀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처럼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시 사는 세계의 시작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믿는 지혜로운 사람은 이 땅에 있는 동안 좋은 부활을 사모하며 살아갑니다.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벧전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