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속죄일의 두 염소

위기 16장 7절에서 10절까지 읽겠습니다.

“또 그 두 염소를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찌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찌니라”(레 16:7-10)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마귀에게 속해 그를 좇아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절대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 모세에게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또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출 19:21,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은 거룩하지 못한 죄인을 보면 당장이라도 돌격하여 죽이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 있는 사람과는 결코 화목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 역시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여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싸워 원수가 되었을 때 서로가 화목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일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서로 화목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서로 화목할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셨고, 또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만족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될 수 있는 길이 열렸기에 성경은 예수님을 속죄 제물인 동시에 화목 제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읽었던 말씀을 보면 두 마리의 염소가 나옵니다. 매년 7월 10일이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일 년 동안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성막에서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날 대제사장은 두 마리의 염소를 준비했는데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 년 동안 지은 모든 죄를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에게 넘기고, 그 염소를 죽여 그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에 뿌렸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죄에서 정결케 되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 후에 대제사장은 아사셀(내어놓음)을 위한 염소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 년 동안 지은 죄를 다시 넘기고는 광야로 보냈습니다.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찌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찌니라”(레 16:21,22)

첫 번째 염소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다면 두 번째 염소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속죄 제사를 드리고 있는 동안 성막 밖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막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성막을 사면으로 두르고 있는 울타리의 높이가 2.5M로서 사람의 키보다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들의 죄를 지고 가는 염소를 보게 하기 위해서 염소를 성막 밖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염소가 미리 정한 사람의 손에 이끌리어 성막 밖으로 나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염소를 보면서 자기에게 죄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기뻐하였습니다.

이 두 마리의 염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에게 넘기시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고난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12)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은 성막 밖으로 나온 두 번째 염소처럼 하늘 성소 밖인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어셨습니다. 두번째 염소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눈으로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죄를 지신 예수님을 사람들로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죄에 대한 심판을 예수님에게 내리심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용납하셨고, 우리 또한 죄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을 받으로 나아갈 때 어머니 리브가가 그를 위해 이삭이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면서 염소 중에서 좋은 새끼 두 마리를 가져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대로 염소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창 27:8-10)

한국어 성경에는 ‘염소의 좋은 새끼’라고 되어 있지만, 영어 성경에는 ‘염소들 중에 좋은 새끼 두 마리(two good kids of the goats)’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두 마리의 좋은 새끼 염소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리브가는 야곱이 축복받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앞세워 아버지 이삭에게 나아가게 한 것입니다. 이삭이 염소로 요리한 음식을 즐겨했다는 말은 예수님을 기뻐하신다는 의미인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축복하십니다. 결국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는  누구든지 자신의 모든 죄를 사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야곱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는 눈이 밝아져 자기들의 벗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부끄럽게 여겨 무화과나무 잎으로 그들의 몸을 가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라고 말씀하시자 아담은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담은 분명 무화과 잎으로 자신을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벗었다고 말합니다. 아담은 무화과 잎이 벗은 자기를 가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화과 잎은 자기의 의를 말하는데 사람의 의는 ‘더러운 옷’(사 64:6)과 같아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가릴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아담에게 지어 입혀 주신 ‘가죽옷’(창 3:21)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이 인간의 두려움을 가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행위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어떤 평안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사 당신의 목숨을 버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예수님으로 자기를 가리게 될 때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품에 안겨 편히 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화목된 자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것이 당신의 자녀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시 13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