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할 수 없는 삶

한3서 1장 11절을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요3서 1:11)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어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가 없는 거룩한 자가 되었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은 우리가 죄를 용서 받았다고 방종한 삶을 살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경험을 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실제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죄악 된 삶이 싫어지는 새로운 마음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육신이 좋아하는 일들에 관심이 많았지만 죄사함을 받으면 그런 것들 보다는 영적인 것들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육신적인 것들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점점 자라면서 그것보다 더 좋은 것들을 알게 되면 장난감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구원받을 때  하나님이 당신을 경외하는 한 마음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 32:38-40)

엄마가 자식을 낳으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만일 이 마음 없이 자식을 사랑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고 즐거운 것이 됩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거듭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과 경외하는 마음을 주시기 때문에 세상적인 것보다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1-3)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을 떠나 마귀를 좇아감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 우리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골 1:21)라고 말씀합니다. 그런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가 여전히 세상을 좇아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실 리가 결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사함을 받을 때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하며, 그 뜻을 따라 살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육체의 정욕과 악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마귀가 있는 동안에는 그런 것들이 우리 마음속에서 쉬지 않고 솟아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어릴 때는 영과 육을 잘 구별하지 못하여 마귀에게 속아 육신을 좇아 행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을 성경은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고전 3:1)라고 말씀합니다. 목자를 따르는 양 떼를 보면 큰 양들은 목자 가까이서 목자를 잘 따라가지만 어린 양일수록 목자를 따르기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려고 행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럴 때 목자가 지팡이로 양을 다스리는 것처럼 하나님도 인생 채찍을 사용하셔서 우리로 정로를 걷게 하십니다.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들도 마귀에게 속아 육신의 정욕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적 거장인 다윗도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와 동침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죽이는 악을 행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심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는 그 고통을 통해서 다시는 그런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그가 나이 많아 늙어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게 되자 그의 신복들이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다윗왕을 봉양하고 왕의 품에 누워 따뜻하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심히 아리따운 처녀로 다윗을 수종하게 하였으나 다윗은 그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악 된 삶이 아닌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은 방종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방종한 삶을 삽니다. 그들에게는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거부하는 그들을 그들의 정욕 가운데 내어 버려두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롬 1:24-32)

성경은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호 14:9)라고 말씀합니다. 거듭나지 못 한 사람 중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영적인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귀에게 잡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삶을 절대 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새 마음과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과나무에서 포도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죄인에게서는 의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죄인과 의인은 그의 열매로 구별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만이 천국에 갈 수 있는 확신을 가지기 때문에 이 땅이 아닌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 소망 없이 세상을 이기고 정결한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1서 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