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셨느니라
요한 복음 1장 16절에서 18절까지 읽겠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어떤 사람은 바닷가에 서서 수평선이 아련하게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 바다의 끝은 어디일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는 이미 자신이 바다 끝에 서 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하여 죽음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충분히 나타내셨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많은 기적을 보며 가르침을 받았던 빌립이 예수님에게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 14:8)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맹목적으로 당신을 믿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믿을 수 있도록 먼저 역사해 놓으시고 믿으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몰라서가 아니라 마귀에게 미혹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히 3:7-1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행하심은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 14:29)는 말씀처럼 당신이 미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때 우리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고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아직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기도 전에 그에게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갔고, 그곳에서 400년 동안 애굽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가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레미아를 통해 타락한 유다인들이 멸망할 것과 그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가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을 남 유다가 멸망하기 전에 미리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 역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예언들과 그 예언들이 성취된 일들은 성경에는 참으로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일을 이루시기 전에 먼저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친히 이루심으로 당신의 살아계심과 당신의 모든 말씀은 거짓이 없는 사실인 것을 사람들로 믿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은 부분에서 말씀하셨고, 그 말씀들을 친히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면서 큰 소리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은 당신에 대해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을 사람들로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이시고 그것을 믿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할 인간이 타락할 것을 아시고 창세 전에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는데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만들어지기 전, 우리가 타락하기 전부터 이미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롬 5:8)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씀하는데 이 사실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른 남자와 미친 듯이 음란을 행하고 있는 아내를 사랑하여 자기의 목숨을 바칠 남편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창세 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마귀의 종이 되어 그를 음란하게 섬기고 있을 때 우리 죄를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롬 5:8)하셨습니다. 이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더 잘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 대해서 성경에 말씀하신대로 이루심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변함없는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만 아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에 무언가 부족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삶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보호하심과 사랑하심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것들이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고 넓게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아는 지식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잘 깨닫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 3:8)라고 말했고, 베드로 역시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밷후 3:18)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막연하게 달려가던 길에서 멈추어 서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잘 설명하시는 분은 없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라고 말씀하는데 하나님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통해 당신을 이미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자라게 됩니다. 그런 사람을 성경은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