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을 이기는 긍휼

예레미야애가 3장 21절에서 23절까지 읽겠습니다.

어느 자그마한 Mall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침부터 한쪽 구석에 앉아 종이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그는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점심때가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였습니다. 상점 주인들은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음식점 주인이 음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왜 자기를 거지 취급하느냐며 화를 냈고, 주인은 하는 수 없이 음식을 도로 가져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글만 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도저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음식을 그의 옆에 살짝 놓아두고 도망치듯 돌아갔습니다.

그가 자존심 때문에 화를 내도, 사람들은 그가 배고픔으로 당하고 있는 고통을 생각하자 음식을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누가복음 10장에는 강도 만나 거반 죽게 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채로 버려두고 갔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를 보고도 피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여행 중이던 한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도와 달라고 소리칠 수도 없었습니다. 거반 죽은 상태라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그를 살렸습니다.

예수님이 나인성 가까이 이르셨을 때도 그랬습니다. 한 과부의 독자 아들이 죽어 사람들이 메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울지 말라” 하시고, 관에 손을 대시며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 7:14)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었던 청년이 살아났습니다.

Mall 구석에서 하루 종일 글을 쓰던 사람도, 강도 만난 사람도, 죽은 과부의 아들도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어떠함이 긍휼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긍휼은 심판을 이깁니다.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긍휼

선지자 예레미야는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읍과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나라가 망해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멸망의 현장을 두 눈으로 보며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다는 사실을 회상하면서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한이 없으시니 자기와 자기 민족이 진멸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반드시 아침 해가 떠오르듯, 하나님이 자기들을 반드시 긍휼히 여기시리라 믿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성실’은 변함없는 신실함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기 백성을 반드시 불쌍히 여기시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진노케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멸망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귀의 종이 되어 고통당하는 우리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멸망의 길에 서 있으면서도 그것조차 알지 못하는 우리를 오히려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사람들이 두 행악자와 함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십자가 아래에서 병사들은 예수님의 옷을 나누려고 제비를 뽑고 있었습니다. 백성과 관원들은 “남을 구원하였으니 자기도 구원하라”며 비웃었고, 군병들조차 신포도주를 내밀며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눅 23:37)고 하면서 희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행위로 보면 저주받아 마땅한 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무지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무한한 긍휼이 우리를 살렸습니다.

우리도 무지하여 하나님을 불신하고 대적했습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조물주 앞에서 행한 일을 생각하면, 영원한 멸망을 받고 또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무지를 보셨고,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사자 앞에서 짖고 있는 강아지가 있다면 그 사자의 무서움을 모르는 강아지가 안쓰럽고 불쌍해 보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강아지를 사자에게서 떼어놓아 안전한 곳에 두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은 것도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 긍휼이 없었다면 우리는 무지함 속에서 영원히 멸망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죄보다 하나님의 긍휼이 크고, 우리의 무지보다 하나님의 긍휼이 깊으며, 우리가 받아 마땅한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긍휼은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