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생각을 버리고

한 젊은 아가씨가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한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되자 그 남자에게 뱃 속에 있는 아이를 위해 결혼할 것을 제안했지만 그 남자는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여자의 아버지는 아이를 유산시킬 것을 강하게 권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성화를 이기지 못한 그는 마침내 아이를 유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이를 유산시킨 후에 자기가 자기의 아이를 죽였다는 심한 죄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녀는 그 남자가 있는 나라에서 살기가 싫어서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식을 죽였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교회에 갈 때마다 하나님께 울면서 자기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지만, 자신이 지은 죄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면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돈을 버는대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죄는 자신을 억눌러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가 지칠 대로 지쳐있을 즈음에 아는 사람의 권유로 한 성경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이 지신 세상 죄 속에 자식을 죽인 자기의 죄도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기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자기의 모든 죄가 용서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는 날듯이 기뻤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그의 마음은 평안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사람도, 그 어떤 것도 이 여인을 그의 죄에서 구원할 수가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를 용서받지 못할 죄에서 구원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히 1:3)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그 여인의 죄를 깨끗하게 씻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또한 성경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라고 말씀하는데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죄에 매여 있는 사람도 그 죄에서 해방시켜 자유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 여인처럼 자신의 죄에서 벗어나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믿지 않아 여전히 자신의 죄에 매여 있습니다. 성경은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피로 자신의 모든 죄를 씻으셨다는 말씀을 믿을 때 그 말씀이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여  그 사람을 죄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구속을 믿지 않고 아직도 여전히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성경은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 4:2)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집요하게 방해합니다. 마귀는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갖가지 생각들을 집어넣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성경은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3,4)라고 말씀하는데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에 마귀가 역사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마귀는 자신이 주는 생각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도록 그럴싸한 이유를 갖다 댑니다.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사라가 그 소리를 듣고 속으로 웃으면서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창 18:12)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남편 아브라함은 자식을 낳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늙었고, 자기의 경수가 끊어진 지도 오래되었는데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합당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비록 성경은 예수님이 모든 사람의 죄를 씻어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가 없는 거룩한 자라고 말하기보다는 죄가 있는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자기 눈을 가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마귀가 준 생각에 잡혀 있는 사람은 사라가 어떻게 늙어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히 11:11,12)

사라는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였고, 자기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자기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자 그 말씀이 그의 속에서 역사하여 그로 잉태하는 힘을 얻게 하였습니다.

성경은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롬 3: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다 거짓되기 때문에 사람의 모든 생각은 다 거짓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사 55:7)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죄를 지었으니까 죄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데 그 거짓된 생각을 버리지 않고서는 하나님에게로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가 있다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이 말씀을 믿으면 자신이 죄가 전혀 없는 의로운 자가 되었음을 깨닫고 죄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들어온 자신을 발견하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보이셨느니라

보이셨느니라


요한 복음 1장 16절에서 18절까지 읽겠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어떤 사람은 바닷가에 서서 수평선이 아련하게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 바다의 끝은 어디일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는 이미 자신이 바다 끝에 서 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하여 죽음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충분히 나타내셨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많은 기적을 보며 가르침을 받았던 빌립이 예수님에게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 14:8)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맹목적으로 당신을 믿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믿을 수 있도록 먼저 역사해 놓으시고 믿으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몰라서가 아니라 마귀에게 미혹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히 3:7-1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행하심은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 14:29)는 말씀처럼 당신이 미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때 우리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고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아직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기도 전에 그에게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갔고, 그곳에서 400년 동안 애굽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가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레미아를 통해 타락한 유다인들이 멸망할 것과 그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가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을 남 유다가 멸망하기 전에 미리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 역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예언들과 그 예언들이 성취된 일들은 성경에는 참으로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일을 이루시기 전에 먼저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친히 이루심으로 당신의 살아계심과 당신의 모든 말씀은 거짓이 없는 사실인 것을 사람들로 믿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은 부분에서 말씀하셨고, 그 말씀들을 친히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면서 큰 소리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은 당신에 대해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을 사람들로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이시고 그것을 믿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할 인간이 타락할 것을 아시고 창세 전에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는데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만들어지기 전, 우리가 타락하기 전부터 이미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롬 5:8)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씀하는데 이 사실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른 남자와 미친 듯이 음란을 행하고 있는 아내를 사랑하여 자기의 목숨을 바칠 남편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창세 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마귀의 종이 되어 그를 음란하게 섬기고 있을 때 우리 죄를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롬 5:8)하셨습니다. 이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더 잘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 대해서 성경에 말씀하신대로 이루심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변함없는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만 아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에 무언가 부족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삶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보호하심과 사랑하심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것들이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고 넓게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아는 지식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잘 깨닫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 3:8)라고 말했고, 베드로 역시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밷후 3:18)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막연하게 달려가던 길에서 멈추어 서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잘 설명하시는 분은 없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라고 말씀하는데 하나님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통해 당신을 이미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자라게 됩니다.  그런 사람을 성경은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