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불경건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거두실 때에는 무슨 희망이 있으랴”(욥 27:8)
어떤 사람은 자기 소원에 지나도록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소유가 그 사람을 멸망에서 건질 수가 없다. 인생은 잠시 피었다가 시드는 꽃과 같고,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 사람은 자기의 재물에 치심치 말고, 오직 모든 인간을 심판하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전 7:2)라고 말씀한다.
152
“음식은 땅으로부터 나오나 그 밑은 불처럼 변하였도다 그 돌에는 청옥이 있고 사금도 있으며 그 길은 솔개도 알지 못하고 매의 눈도 보지 못하며 용맹스러운 짐승도 밟지 못하였고 사나운 사자도 그리로 지나가지 못하였느니라”(욥 28:5-8)
땅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게 보이나 그 속은 뜨거운 마그마가 들끓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눈으로는 그것을 볼 수가 없다. 그러다가 땅속에 있는 마그마가 화산을 통해 지표 밖으로 나오면 그제야 사람들은 그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 역시 그렇다. 우리의 감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 알게 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 성경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고 말씀한다.
153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욥 30:20)
만일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다면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그것은 마치 농부가 밭을 갈아도 땅이 그 효력을 주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눅 11:9)고 말씀하셨다. 이 약속이 얼마나 우리를 복되고 기쁘게 하는지 모른다. 우리는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응답하심을 보게 된다.
154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욥 34:23)
세상의 판사는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 많은 증인과 증거를 필요로 하는 것은 재판받는 사람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는 것은 사람을 다 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숨길 것이 없는 벌거벗은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임이 분명하다.
155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릴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는 이가 누구냐”(욥 38:41)
까마귀도, 우리도 하나님이 까마귀 새끼에게 먹이를 주신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행하신다.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로 그의 아내를 만드실 때 아담은 깊이 잠들어 있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지 못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서 일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해도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일하고 계신다.
156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욥 40:4)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형제 중 한 사람으로 생각할 때는 예수님이 자기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자기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모든 입을 가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섬기는 자가 되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입이 열려 있는 것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 때문이다.
15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욥 42:7)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이 많다. 욥의 세 친구는 잘못된 지식으로 욥을 정죄했다. 하나님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우리를 만나시는데도 마치 죄와 사망의 법으로 우리를 만나는 것처럼 생각하면 하나님이 정죄하지 않는 사람을 정죄하는 죄를 범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르게 배우지 못하면 감사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며 좌절하게 된다. 우리는 성경 말씀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르게 깨우칠 수 있는 은혜를 절대 입어야 한다.
158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나무는 물이 없으면 말라 죽는다. 나무는 물이 풍성한 곳에 심겨져 있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말씀인 예수님 안에 심으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말씀으로 충만케 하시고, 말씀 안에서 자라게 하시며, 말씀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신다. 성경은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라고 말씀한다.
159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시 4:8)
우리는 조그만 걱정거리가 있어도 밤잠을 설칠 때가 많다. 우리가 평안히 눕고 잘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시 3:5)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실상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다.
160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시 6:1-4)
다윗은 왕이었지만 그의 왕 됨이 그에게 찾아오는 고통을 막을 수 없었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이 그의 두려움을 쫓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골리앗을 죽이고, 전쟁에서 보인 그의 용맹함이 그를 고난에서 건져낼 수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된 것은 그것들은 우리 영혼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시며 안위자시기에 우리는 그분만 의뢰하며 바라보아야 한다.
161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시 9:10)
사람이 하나님을 의뢰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신함으로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나님을 아는 자는 마땅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며 찬양한다. 성경은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 6:3)고 말씀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하나님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를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소망 가운데 힘 있게 여호와를 의지한다.
16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 14:2,3)
지극한 가난 속에서 비참하게 생활하는 사람을 보면 돕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종이 되어 항상 악을 행하며 고통 속에 있는 우리의 비참함이 하나님의 마음속에 구원자를 보내고자 하는 긍휼을 일으켰다. 이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마땅히 멸망 받아야 할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는데 이는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이다.
163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 16:6)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인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시지만 그것을 볼만한 눈이 없으면 좋은 것이 오히려 원망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가 복되다.
164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
다윗은 환난을 만날 때마다 자신에게는 그것을 이길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환난을 이길 힘을 주시고, 모든 환난에서 건지시는 것을 보면서 그의 마음은 감사로 가득했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가 만나는 어려움은 우리의 힘이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만든다.
165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다윗은 특별히 어떤 부분에 대해서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은 모든 부분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자가 양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는 것처럼 하나님은 다윗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시기에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 그런데도 우리가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이상의 것들을 사모하기 때문이다.
166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례히 행치 않으시고, 인격적으로 겸손하게 대해 주신다. 우리가 고통으로 인해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외면치 않으시고 우리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시며, 우리가 힘들어 지쳐 쓰러질 때면 우리에게 힘을 주사 우리 무릎을 일으키신다. 성경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시 113:5-9)라고 말씀한다.
167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낮이 낮인 까닭은 빛이 있기 때문이며, 밤이 밤인 까닭은 빛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빛의 자녀인 것은 빛 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우리에게서 흘러나온다.
168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시 30:11,12)
우리의 슬픔은 변하여 춤이 되며, 우리의 베옷은 벗겨지고 기쁨으로 띠 띠게 된다. 우리에게 반드시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짐은 하나님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고 말씀하셨다.
169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4:6-8)
엄마가 혼을 내려고 할 때 아이가 할머니의 품으로 도망하면 할머니는 엄마의 노여움에서 그를 보호해 준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곤란에 빠졌을 때 하나님에게로 피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천사에게 우리를 구원하라고 명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에게 부르짖을 때마다 항상 응답하셔서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신다. 성경은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 4:2)라고 말씀한다.
170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시 36:1,2)
하나님을 사람처럼 생각하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자는 사람을 속이듯 하나님을 속일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 반면에 하나님이 자기 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조차 놓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 성경은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시 94:8,9)고 말씀하신다.
171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사람은 계산을 잘하지 못한다. 사람은 자기의 삶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처럼 생각하여 앞으로 맞이할 죽음 뒤의 세계에 관해서는 관심 없이 육신의 욕망을 따라 달려간다. 닭장의 닭들이 자기 동료가 주인의 손에 잡혀 나갈 때는 놀라 퍼드득거리다가 이내 먹이를 쪼아 먹는 데만 마음을 쏟는 것처럼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도 자기 인생이 한 뼘 길이만큼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계산하지 못한다.
172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3-5)
어린아이는 잘 놀다가도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운다. 우리 역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보일 때는 기뻐하며 감사해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심으로 돕지 않는다는 생각에 빠지면 이내 불안해하며 슬픔에 빠진다. 그러나 엄마가 항상 아이와 함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움 속에 있을 때 언제나 돕는 자로 나타나셔서 우리로 하나님을 찬송케 하신다.
173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시 45:2)
사람의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그래서 사람의 말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죽인다. 그러나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은혜를 입술에 머금고 계시기에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가 긍휼을 입는다. 그래서 사람을 의지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이며, 예수님을 의지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