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365

01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 2:19)

하나님이 만드신 들짐승과 각종 새의 이름은 아담이 지었지만, 사람을 뜻하는 아담은 흙 곧 붉은 흙을 나타내는 말로서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물에서 건져내었다는 의미를 가진 자신의 이름을 통해 모세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았던 것처럼 우리는 아담의 이름을 통해 우리 근본이 흙인 것을 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 것을 알게 된다.


0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창 2:21,22)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실 때 아담이 깨어 있었다면 그의 고통은 극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을 잠들게 하심으로 고통없이, 그가 일한 것 없이 사랑하는 아내를 얻게 하셨다. 우리가 영생을 얻은 것도 우리의 어떤 수고와 노력 없이 오직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되었다.


03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창 7:19-21)

홍해 바다의 물이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생명의 방패가 되었지만, 애굽 사람들에게는 사망의 무기가 되었던 것처럼 물은 모든 사람을 살게도 하지만 재앙과 저주가 되기도 한다. 십자가의 도가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미련한 것처럼 환란 역시 어떤 사람에게는 원망의 조건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감사의 조건이 된다.


0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사람은 애굽에서 몸은 나왔지만, 마음마저 나오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홍해 바다를 건넘으로 인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광야 생활 중에 어려우면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우리의 마음이 육신의 소욕을 따르던 삶에서 떠나야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할 수 있다.


05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4-6)

영화를 볼 수 있는 티켓을 무료로 얻었다면 비록 그 사람은 티켓을 위해 돈을 지불하지 않았을지라도 극장에서 티켓을 가진 사람에게 제공하는 모든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몸에서 날 상속자와 그의 자손이 하늘의 뭇별처럼 많아질 것을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이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그 약속 안에 있는 것들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다.


06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창 19:1,2)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볼 수 있게 육신의 몸을 입고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당신을 나타내셨지만, 우리 삶 속에서도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 마음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 우리를 붙잡으시는 하나님을 통해 우리를 감찰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본다.


07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창 19:15,16)

예수님을 향해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갈 때 예수님이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고 물에서 건져내었던 것처럼 천사는 곧 멸망 받을 소돔에서 나가기를 지체하는 롯의 손을 잡고 성 밖에 두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당신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는데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08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자기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증거를 얻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 죄를 위해 죽음에 내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증명하셨다.


09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창 27:33)

이삭은 장자인 에서에게 축복하기를 원했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야곱에게 축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고, 그 뜻 앞에 자신의 원함을 굴복시켰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선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유익하게 하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10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창 30:1)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 바다를 무사히 건너자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했지만, 자기들의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자 이내 하나님을 원망했다. 라헬이 곱고 아리따웠기에 레아보다 야곱의 사랑을 더 받았지만, 자신에게는 자식이 없는 것으로 인해 언니를 시기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께 감사했을지라도 마귀에게 미혹되어 육신의 욕망에 빠지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


1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창 32:1,2)

야곱의 모든 길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와 함께하며 지켰다. 그런 것처럼 우리에게도 우리를 지키는 천사들이 있다. 단지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시 34:7)는 말씀처럼 우리를 지키는 천사들은 우리를 모든 어려움에서 구원해 낸다.


12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창 35:3-5)

야곱의 딸 디나를 하몰의 아들 세겜이 강간한 일로 인해 시므온과 레위가 할례를 받고 고통하는 그 성의 모든 남자를 죽였다. 그로 인해 야곱의 가족은 주위 가나안 사람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에 처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만들어 그들을 추격하지 못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를 취한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심으로 바로가 사래를 아브라함에게 보내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해하려는 사람에게 두려움이나 재앙을 내려 우리를 해하지 못하게 하신다.


13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창 37:18-20)

요셉의 형들은 그를 죽임으로 그가 꾼 꿈이 헛된 것임을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막으심으로 그들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천국에 대한 꿈은 하나님이 지키시기에 그 누구도, 그 어떤 것으로도 헛되게 할 수 없다.


14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창 40:7,8)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사람들은 나름대로 해석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해석이 정확할 수 없는 것은 그 꿈을 바르게 해석할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 대해서 우리나 다른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지만 그 판단이 정확할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눈과 하나님의 눈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에 대한 올바른 판단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잘못을 해도 죄가 없는 거룩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15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자루를 각기 푸니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창 44:11,12)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라는 말씀처럼 요셉은 형제들을 철저하게 죄인으로 몰고 가 그들을 향한 자기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보이기를 원했다. 우리가 얼마나 악한 자인지를 깊이 깨달을수록 그런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마음에서 더욱 커진다.


16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창 46:29,30)

야곱과 요셉은 서로 오랫동안 보지 못했지만, 세월이 서로를 향한 사랑을 희석시키지 못했듯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역시 그 어떤 것으로도 희석되지 않고 영원히 동일하다.


17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요셉의 형들이 비록 자기들을 향한 요셉의 사랑을 보았지만, 아버지 야곱이 죽자 자기들이 요셉에게 행한 일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두려워한다. 마귀는 우리가 만나는 형편을 통해 그에 맞는 아주 그럴듯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가 그 생각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떠나 요셉의 형들처럼 두려워하게 된다.


18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레 2:4,5)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를 낳고 석 달을 숨겼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었고,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고 멀리 서 있었다. 그때 놀랍게도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그곳에 나타났고, 아기를 데려다가 자기의 아들로 키웠다. 우리가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없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신다.


19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출 7:10-12)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듯이 마귀의 역사도 있다. 그러나 마귀의 역사는 언제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 마귀는 우리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주지만 그것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에 삼켜버리고 만다.


20

“바로의 신하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종들과 가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였으나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의 종들과 가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더라”(출 9:20,21)

하나님이 애굽에서 한 번도 없었던 무거운 우박을 내릴 것을 경고하셨을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의 행동은 달랐다. 사람이 행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


21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출 13:9)

애굽의 바로가 강함으로 이스라엘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은 그보다 더욱 강하기에 이스라엘을 바로에게서 구원해 내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시험과 어려움에서 구원해 내실 수 있는 충분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22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이스라엘이 홍해 바다와 바로 군대 사이에 끼여 두려움 속에서 떨었던 것처럼 우리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 속에서 두려워할 때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홍해 바다를 가르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역사하셔서 우리를 모든 어려움에서 구원해 내신다. 그런 일을 통해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출 17:5,6)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위해 번제 드릴 숫양을 준비해 두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자손이 마실 물이 없어 모세와 다투고 있는 동안 하나님은 반석에 물을 준비해 두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24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출 20:3,4)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시기와 질투는 하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귀에게서 온 것이다.  마귀는 사람 마음속에 자기의 온갖 악한 것을 집어넣었는데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그것을 보게 하셨다. 우리 속에 일어나는 더럽고 죄악된 것들은 우리가 아닌 마귀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죄의 주체인 마귀가 우리 속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5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3)

자기에게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을 다 준행하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기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능력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26

“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출 27:1,2)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씻었던 번제단에 대한 말씀이다. 이 번제단은 우리 죄를 씻어 깨끗케 하시는 예수님의 그림자인데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어 영원한 멸망에 떨어졌을 것이다. 우리 죄를 위해 예수님을 준비하셨다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충분한 증거가 된다.


27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 그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출 29:9)

제사장은 거룩하게 구별된 자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한다. 성경은 구원받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입은 것은 예수님을 믿어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직분은 아무나 취할 수가 없다.


28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출 32:19)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율법은 돌판에 하나님이 친히 기록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 돌판은 쉽게 깨졌는데 이는 장차 율법이 예수님의 육체로 폐하여질 것을 예고한다. 율법은 인간의 죄는 지적하지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인간을 바꿀 수는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우리를 바꿀 수 있다.  


29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다가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무릇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왔으며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모든 자가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 섬기는 일에 소용되는 조각목이 있는 모든 자는 가져왔으며”(출 35:22-24)

회막을 짓기 위해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예물을 드렸다. 사람 보기에 값진 것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회막을 짓는 데 필요했다. 우리 보기에 보잘것없게 보이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일에는 요긴한 것들이다. 우리는 때때로 많은 재능을 가진 자를 부러워하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모두가 복음의 일에 필요한 귀한 일꾼들이다.


30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출 40:36,37)

양은 근시안적이어서 멀리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게 되면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사막을 여행하는 자가 인도자의 말을 듣지 않는 것과 같다. 지혜로운 양은 자기의 음성을 듣지 않고 목자의 음성만 듣고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