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문장만큼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문장은 세상에 없다. 이 말씀에는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지니신 창조주 하나님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 가운데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지극히 작은 일부분만 살펴보아도 그 장엄함과 섬세함에 압도되어 정신을 잃을 정도인데, 하물며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는 얼마나 더 크고 놀랍겠는가.
이처럼 지극히 크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없는 존재와도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입을 가리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만을 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다윗은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편 8:3-4)라고 고백하였다. 이보다 더 합당하고 정당한 고백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이 놀라운 세계를 펼쳐 놓으신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을 경외하며 찬양하는 것이 마땅한 본분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주님’, 곧 우리의 주인이시라 부르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땅의 처음 모습은 어두움이었다. 그래서 땅은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였다. 그러나 바로 그 상태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무대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자 곧 빛이 있었고, 어두움은 즉시 물러갔다. 그로 인해 땅은 더 이상 혼돈과 공허 가운데 있지 않고, 빛 가운데서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후 4:6)
땅은 우리의 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 마음도 본래 어두움의 권세 아래 있었다. 그래서 혼돈과 공허 가운데 살아가며, 어두움 속에서 고통하고 신음했지만 그 권세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크신 긍휼을 베푸시어 마침내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주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임하시자 어두움은 물러가고, 우리 마음은 하나님의 빛으로 환하게 밝아져 기쁨과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낮과 밤은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자연적인 낮과 밤과는 다르다. 이때는 아직 하나님이 해와 달을 만드시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빛이시라”(요일 1:5)고 말씀하며, 예수님도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 8:12)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곧 빛이시요, 낮이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향해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 5:5)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두움은 빛이 없는 상태, 곧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상태를 말하며,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마귀를 가리킨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 바울에게 하신 말씀에 이것이 잘 나타나 있다.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행 26:17-18)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눈에 보이는 낮과 밤을 비유로 삼으사,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 가운데 행할 것을 권면하셨다.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요 11:9-10)
하나님은 사람과 짐승을 지으시기 전에, 그들이 살아갈 하늘을 먼저 만드셨다. 이는 마치 아이를 잉태한 여인이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과 같다.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말씀에는,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신 1:33)
또한 성경은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고후 12:14)라고 말씀하며, 예수님도 이렇게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
하나님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십 년 동안 앞서 행하시며 도우셔서 그들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셨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행하시며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 이로써 과거에도, 현재에도,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나타내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물이 땅을 덮고 있을 동안에는 하나님은 땅에 아무 일도 행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땅에 역사하시기 위해서는 먼저 땅을 덮고 있던 물을 걷어 내셔야 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역사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 마음을 덮고 있는 생각들을 걷어 내신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마귀는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생각을 심어 놓았다. 우리 마음이 어두웠던 것은 우리를 힘들게 했던 여러 형편들 때문이 아니었다. 오직 마귀가 심어 놓은 그 생각들이 하나님을 아는 영광의 빛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5)라고 말씀한다.
결국 성경이 말하는 좋은 땅이란,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드는 생각들이 제거된 깨끗한 마음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복음이 온전히 심겨지고 임하게 하시기 위해, 먼저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물이 걷힌 땅에는 아직 어떤 생명도 없었다. 오직 메마르고 황량한 땅뿐이었다. 그러나 그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님의 말씀은 땅으로 하여금 풀과 각종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내게 하였고, 삭막했던 땅은 아름다움과 풍성함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사 35:1-2)
땅은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자 메마른 땅에서 생명이 솟아났고, 황량한 곳은 아름다운 곳으로 변화되었다. 하나님은 그 변화를 통해 자신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나타내셨다.
우리의 마음도 본래 죄로 인해 생명이 없고 소망이 없는 메마른 광야와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마음에 말씀을 보내 주셨다. 그 말씀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셨다. 그 결과 메마른 심령에는 생명의 샘이 흐르고, 절망 가운데 있던 영혼은 소망을 얻으며, 하나님이 이루신 아름다운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찬양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메마름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시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시며, 죽은 자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친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렘 32:27)
하나님은 해와 달을 단순히 빛을 비추고 낮과 밤을 구분하는 용도로만 만드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해 징조를 나타내는 기능도 주셨다. 해와 달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를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나타내실 때 때로 그 자연의 질서를 초월하여 해와 달을 통해 기적과 표적과 징조를 나타내셨다.
여호수아 시대에 예루살렘 왕을 중심으로 한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이 기브온을 공격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는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성경은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수 10:13)라고 기록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연의 질서까지 다스리시며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 기적이었다.
또한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셨다. 그리고 그 약속을 확증하기 위한 표적으로 해시계의 그림자를 십 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해의 그림자가 뒤로 물러가는 초자연적인 일을 통해 히스기야에게 주신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확증하셨다.
그러나 해와 달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는 과거의 사건에만 머물지 않는다. 성경은 주의 날, 곧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완성되는 마지막 때에도 해와 달을 통해 징조가 나타날 것을 말씀한다. 오순절에 베드로는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 선포했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행 2:19-20).
이처럼 성경에서 해와 달은 단순한 천체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 안에서 움직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필요하실 때 그것들의 질서를 초월하여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는 기적을 행하시고, 자신의 말씀을 확증하는 표적을 보이시며, 다가올 하나님의 때를 알리는 징조를 나타내기도 하신다.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하나님은 보이는 만물을 통해 보이지 않는 영적인 진리를 우리에게 깨닫게 하신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씨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씨가 뿌려진 땅을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으로 설명하셨다. 또한 목자와 양을 통해 우리의 목자 되시는 예수님과 그분의 양인 우리와의 관계를 말씀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보이는 세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설명하신다.
하나님은 궁창에 해와 달과 별들을 두시고 그것들로 어둠 가운데 있는 땅을 비추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의 마음에 빛을 비추시는 것을 보여 주신다.
요한복음 9장에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이 나온다. 제자들이 그를 보고 예수님께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 9:2)라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어둠 가운데 있는 우리의 마음에도 빛을 비추신다. 그리고 그 빛을 통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게 하신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