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편

“복 있는 사람은”이라는 말을 히브리어의 의미를 살려 표현하면 “복되도다, 그 사람은!”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얼마나 복된 사람인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감탄과 선언에 가깝다.

히브리어 ‘바라크’는 ‘축복하다, 복을 주다’라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인 반면, 여기에서 사용된 ‘아쉬레이’는 어떤 사람이 참으로 복되고 행복한 상태에 있음을 선언하는 표현이다. 시편 1편은 바로 이 ‘아쉬레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우리는 본래 악인들의 꾀를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서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았던 죄인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삶으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 있는 사람인 것은 단순히 세상에서 좋은 것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 나무가 끊임없이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시냇가에 심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심은”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샤툴’인데, 누군가에 의해 그곳에 심겨진 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나무가 스스로 시냇가로 간 것이 아니라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곳에 심겨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영적인 기갈 가운데 있던 우리를 하나님은 은혜로 그리스도 안으로 옮기셨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공급받는다. 그러므로 어려움과 시련이 찾아와도 우리의 영혼이 완전히 메마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열매를 맺게 된다.

시편 92편 12절부터 14절에는 이렇게 말씀한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