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장 1절에서 32절까지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한복음 9:1-3)
사람은 저마다 서로 다른 조건과 환경에서 태어납니다. 어떤 이는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늘 빚과 가난에 시달리는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또 건강하게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병약하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 만큼 외모나 신체적 어려움을 안고 태어나는 이도 있습니다.
자신이 부족한 조건 속에서 태어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태어날 것인지는 우리의 능력 밖에 있는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과 인생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그렇다면 남들보다 부족한 조건에서 태어난 사람은 억울한 것일까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놀랍게도 어려움과 부족함이 많은 이들 가운데서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더욱 풍성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맹인으로 태어났기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가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그의 죄 때문도 아니고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처지를 깊이 원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생 가운데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눈을 뜨게 하셨고, 그는 그 일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세우며 심문할 때도,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요 9:30-33)
만약 그가 맹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을 깊이 알고 믿게 되는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우리가 여러 가지 문제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에 즉각 응답하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하나님을 원망할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때, 성경의 말씀처럼 우리의 입술에는 찬양의 열매가 가득 맺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시 126:2)
다윗 역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으나 즉각적인 응답을 받지 못한 때가 있었습니다. 시편 40편 1절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던지 ‘기다리고 기다렸더니’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을 때, 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시 40:2-3)
선지자 사무엘을 낳은 한나 역시 그러했습니다. 오랜 세월 자녀가 없어 눈물로 기도했던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사무엘을 얻은 뒤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삼상 2:1-2)
이처럼 기다림이 있었기에 진정한 감사가 있고, 눈물이 있었기에 깊은 찬양이 있습니다. 이러할진대 어떻게 하나님의 응답이 더딘 것이 불행의 조건만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람들은 종종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류에게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며,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더라면 더 행복했을 텐데”라고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가 불행으로만 끝나지 않은 것은, 그로 인해 독생자를 죽이기까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그의 누이들이 예수님께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요 11:4)
이로 보건대 하나님은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일들을 통해 당신이 영광 받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도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은, 그 일로 인해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 입술에 찬양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