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거지

차들이 신호를 기다리는 교차로에서 한 거지가 구걸하고 있었다. 그는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다른 한 손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혹시 자신에게 돈을 줄 사람이 있는지 두리번거리거나 애원하는 기색도 없이 그저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동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를 불러 돈을 건네는 사람이 있었다.

성경은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 2:13)고 말씀한다. 심판은 죄에 대한 마땅한 결과이지만, 긍휼은 죄를 따져 묻기보다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그 거지가 긍휼을 입은 이유는 그의 태도나 자격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도움을 구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간음하다 붙잡혀 온 여인도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 그의 죄만 보셨다면 그는 은혜를 입지 못했을 것이다. 성경은 그 여인의 마음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여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긍휼이 풍성하신 예수님 앞에 서게 되었고, 그곳에서 정죄가 아니라 긍휼을 입었다.

귀신 들린 딸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가나안 여인도 그렇다. 성경은 그녀의 자격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예수님께 나아와 긍휼을 구했다는 사실을 기록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녀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러한 성품을 알았기에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하심이 후하심이니이다.” (시 86:4-5)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는 근거는 우리의 자격이나 행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분의 인자하심과 은혜를 입는다.